[세계의 창] 감동을 주는 원칙과 절차

입력 2017-06-13 00:05:00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새 정부 지지율 80% 넘어 기록 경신

통치 아닌 어디서든 몸소 개혁 실천

최근 원칙 못 지킨 인사에 야당 반발

과거 위장 전입 정치인은 과연 없나

중학교 시절 한여름 한문 수업 중에 비가 갑자기 쏟아지더니 이어서 번개와 함께 엄청난 천둥소리에 교실 안의 우리 학생들은 모두들 깜짝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연세 지긋하신 한문 선생님은 미동도 안 하고 겁먹은 우리들을 향해 "이 녀석들아 한문을 배웠는데 이런 천둥소리에 그러면 되냐? 좀 의연할 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한 후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에 경외의 마음과 함께 정말 한문 선생님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5분쯤 지났을까? 이번엔 좀 전의 소리보다 2배는 큼직한 천둥소리가 났다. 우리는 방금 학습을 받아서인지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어이쿠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며 그야말로 교탁 밑으로 들어갈 듯한 행동을 취하였다. 우리는 이 모습에 웃음보가 터졌고 선생님은 창피함과 겸연쩍은 모습으로 손을 저으며 우리를 진정시켰다. 선생님의 권위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후 졸업할 때까지 그 공자 왈 맹자 왈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 중에 스페인어 강독이란 과목이 있었다. 주로 스페인어권 국가의 사회문화 풍습을 반영한 에피소드 중심의 읽을거리를 번역하고 설명해주는 그런 수업이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 있었다. 남녀 꼬마 아이 둘이 무언가 잘못해서 교장 선생님한테 불려가 야단맞는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매주 한 번씩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도열해 일사병 걸릴 것 같은 그런 몽롱한 표정으로 훈시를 하는 교장 선생님만 보았으니 강독 교재의 그 대목은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이것이 이해가 된 것은 그 후로 20년이 흘러 교수가 되어 연구년으로 미국에 가서 1년간 아이를 집 주변 초등학교에 보내면서였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좀 늦어서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가고 없고 학교는 문 닫을 채비를 하는 등 한산하였다. 그런데 평범한 복장의 어느 늙수그레한 중년 아저씨가 커다란 열쇠 뭉치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출입문마다 점검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연히 수위 아니면 청소부쯤 되겠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는데, 미국의 교장 선생님 역할이 그런 것이란다. 교장직이란 학생을 불러 상담하고 때로는 체벌도 하고, 재난 대피 훈련할 때는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문단속 등 안전 문제는 직접 실천하며 책임지는 자리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곳곳에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 정권이 바뀌면 늘 그랬으니 지금 정부도 초기니까 이렇게 하다가 말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권 초기 대통령 지지율이 과거 기록을 갈아치우며 80% 이상 올라가는 것을 보면 이번에는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가 않고,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든다. 대통령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몸소 실천하면서 개혁은 단호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한편 최근엔 정치적 어려움도 겪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정한 원칙을 못 지키는 인사를 하기 때문에 야당이 반발하는 것이고 비판도 받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도 결국은 '나와 측근만은 예외인 원칙'으로 호령하면서 소통과 법적 절차를 무시한 국정을 편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기 운영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지도자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킬 때 또 스스로가 앞장서 모범을 보일 때 아랫사람(?)들이 감동을 하고 승복을 하고 알아서 책임을 지는 건전한 조직으로 발전하고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자기도 20~30년 전 위장 전입과 병역 면탈을 했으면서 청문회장에서 원칙과 정의를 지키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정치인은 과연 없을까? 특히 교수, 언론인, 종교인, 권력기관 종사자, 공직자 등 소위 잘나가거나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직종에 있는 사람일수록 군림하려 하지 말고, 비굴하거나 비겁하지 않게 임하며 바담 풍이 아니라 바람 풍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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