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모난 돌'의 화려한 귀환

입력 2017-06-13 00:05:00 수정 2018-10-10 16:43:04

정권이 바뀌면 고위 관료부터 우르르 교체되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탕평 인사니 지역 안배니 능력 위주 따위를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자기 사람' '충성파'를 쓰는 것으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권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일부 눈에 띄는 '인물'을 발탁해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인물은 박근혜 정권에 찍혀 변방을 맴돌거나 공직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은 정권이 바뀌면서 화려하게 복귀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잘났거나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일 처리를 하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잘 알다시피, 윤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차관은 정유라와 관련된 승마협회를 감사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여느 공무원이었다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대충대충 처리했을 일을 원칙대로 처리하려고 덤벼들었으니 '죽을 짓'을 자청한 셈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 출세는커녕 도태되기에 딱 좋은 유형이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이런 유형을 흔히 '꼴통'이라 부르며 경원하고 배척하기 일쑤다. 흔히들 양심이니 신념이니 하고 쉽게 떠들지만, 사회'조직생활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가 기억난다.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는 깡패 안상구(이병헌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의를 원한다. 대한민국 검사니까!" 그 말에 깡패는 기가 차다는 듯 실실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존 웨인이다 이거야?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긴 한가."

이 대사를 곱씹을수록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검사는 정의를 입에 담지만, 실제로는 출세만을 바라는 속물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깡패는 코웃음을 치며 한껏 비웃는다. 과장이 있긴 하지만, 원작자인 만화가 윤태호의 현실감각과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2년 전, 이 영화가 나올 때만 해도 검사의 도덕성이 깡패보다 그리 나아 보이지 않았다. 엘리트 계층인 검사를 '사회의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깡패와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겠지만, 지난해 최순실'우병우 수사 과정을 보면 그런 욕을 먹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검찰이 '산 권력'에 대해서는 충성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아귀처럼 물어뜯는 행태를 보였으니 누가 검찰을 좋아하겠는가.

검찰 행태를 보면서 그 영화에 나오는 부장검사(정만식 분)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는 끝까지 사건을 파헤치려는 우장훈 검사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게 대한민국 검사야! 이제 그만 물고 놔라."

그 당시 검찰, 나아가 공무원 조직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출세하고, 살아남으려면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도 순응하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말인데, 대부분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처신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출세주의자들이 날뛰는 조직에서 괜히 원칙이나 상식 운운하다가 찍히거나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에 그냥 눈감고 모른척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어느 곳이든, 원칙과 상식을 고집하는 부류가 한두 명쯤 있기 마련이다. 조직 내에서는 '모난 돌'이거나 '튀어나온 못' 정도로 여겨지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이런 '꼴통'들이 정부 부처와 사회 곳곳에 박혀 있어야만, 국가는 무너지지 않고 최소한의 건강성을 유지한다.

문재인정부의 인사라고 모두 박수받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잘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양심과 원칙에 따라 행동한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우하고 보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고 깨끗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은 더는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을 것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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