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구문학상 수상작 취소 '상금 반환'

입력 2017-06-12 00:05:01

8년 전 일간지 발표 수필과 전체적 맥락·문장 모두 같아

1천만원 상금을 받은 올해 흑구문학상 수상작이 8년 전인 2009년 포항지역 한 일간지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의혹(본지 9일 자 8면 보도)이 사실로 확인됐다.

본지 보도 이후 문인들이 보내온 올해 수상작 '숲, 그 오래된 도서관'을 분석한 결과, 한자 병행 표기와 단어 등이 몇 가지 더해졌을 뿐 전체적인 맥락과 문장이 모두 같았다. 처음부터 마지막 문단까지 단락 하나를 뺀 것을 제외하면 모든 내용이 일치했다.

취재 당시 "작품을 수정해서 완성했기 때문에 미발표작"이라고 주장하던 행사 주최 측도 보도 다음 날 이를 곧바로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주최 측은 10일 오전 대구에서 심사위원들이 모여 수상작을 취소하고 상금을 반환받아 이를 협찬한 포스코에 돌려주기로 했다. 또 올해는 수상작을 따로 뽑지 않기로 했고, 내년부터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문학상 시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최 측 관계자는 "충격적이다. 작가가 돈에 욕심을 내고 양심을 속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번 일이 문단 전체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 나가겠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했다.

흑구문학상 공모안에 명시된 '미발표 수필 3편'이라는 단서조항을 무시한 채 수상작 선정이 이뤄진 배경에 대해서는 "작가의 양심불량"이라고 해명했다.

주최 측의 대책과 해명에도 불구하고 지역 작가들은 "문학상의 엉터리 수상 관행이 낱낱이 드러났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역에서 이뤄지는 크고작은 문학상 전반을 살펴봐야 한다"며 "상금이 큰 문학상일수록 이른바 '짬짜미'를 통해 시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나돌았다"고 했다.

한 작가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포항시 보조금과 포스코 등 지역기업 후원으로 진행된 지역 최대 문학작품 발굴 행사가 일부 양심 없는 문인들과 책임감 없는 주최 측의 잔치판으로 전락한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기회를 박탈당한 많은 문인들을 생각한다면 주최 측 사과 등으로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문단 권력이 생기면서 터진 문제로 보인다. 문인들 스스로 자정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떤 문학상이라도 투명하게 진행될 수 없다"며 "문인들이 너무 양적으로만 성장하고 있다 보니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문학상이 속출하고 논란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한편 포항시는 관련 대책회의를 갖고 조만간 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경찰은 기초자료를 확보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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