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전략적 모호성' 사드 멍에
배치냐 철회냐 너무 일찍 기로에
미국내 한국 불신 여론 조기 진화
文 대통령 비장의 한수 내놓기를
새 정부가 너무 일찍 기로에 섰다. 문제는 어느 쪽 길을 가든 험한 길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일이 이렇게 꼬일 것은 충분히 예측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때 사드 문제는 다음 정부에 맡기라고 요구했다. 지지층의 사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사드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다는 말 외에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 '전략적 모호함'이 멍에가 됐다. 청와대의 전략은 처음부터 시간을 버는 것이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결국은 사드 배치냐, 철회냐 하는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층 때문에라도 전(前) 정부가 합의한 대로 사드 배치를 용인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사드 철회를 밀어붙인다는 건 한미동맹이 위험해진다. 민심 이반도 불 보듯 뻔하다. 더욱이 북한은 새 정부 출범 뒤로 주례행사처럼 미사일을 쏘아대지 않는가.
청와대는 '사드 보고 누락' 사건을 들고 나왔다. 왕조시대 국문(鞠問)처럼 한민구 국방장관과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출두시켜 조사까지 벌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충격적'이라고 한 '보고 누락'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사드 발사대 4기가 들어온 것은 4월 26일 일제히 보도됐던 '공지의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중국이 문제 삼는 건 이미 배치된 X 밴드 레이더이지 발사대가 아니다. 이러니 보고 누락 사건은 사드 배치를 재고하려는 명분 쌓기 아니냐는 미국의 의심을 받기에 족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건 직후 일반환경영향평가는 물론 전략환경영향평가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사드 배치는 불변이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정부 입장은 "시민이 문제가 있다는데 대통령이 그걸 무시하고 사드 운용을 허락하겠는가"라고 한 문정인 특보의 말대로 종국엔 사드 철회로 간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러자 청와대를 찾은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은 문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으면 1조원 돈을 다른 데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원하지 않으면 사드를 빼겠다는 이 말은 더빈이 워싱턴에 돌아가 기자들에게 말해 비로소 알려졌다. 이런 미국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선지 정의용 안보실장이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났다. 그는 맥매스터에게 사드 배치 지연 경위를 소상히 설명했는데 "미국은 충분히 이해를 표시했고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은 명백한 과잉 해석인 것으로 곧 드러났다. 미국의 입장은 그저 한국의 의사를 '알겠다'고 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미국시간으로 8일 오후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맥매스터가 참석한 '사드 긴급회의'가 열렸다. 트럼프와의 주례회동이 '사드 긴급회의'가 된 것이다. 이 긴급회의는 이례적으로 공개됐다.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에 실망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식으로 특징짓고(characterize) 싶지 않다"고 답했다. "사드가 동맹의 결정이었음을 계속 얘기할 것이다"는 뼈있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엔 미국의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청와대가 움직였다. '사드 긴급회의' 12시간 뒤 정의용 안보실장이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다. 그는 "사드는 한국과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이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의 말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미국 조야(朝野)를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더빈 의원은 상원 청문회에서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영향력 있는 외교협회나 민간 연구소에서도 냉소가 쏟아진다. 랜드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사드 철수는 문 대통령의 마음대로지만, 철수하면 주한미군을 무방비 상태로 둘 수 없다"며 미군 철수까지 언급했다. 아마 청와대는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한미정상회담에서 사드를 의제에서 제외하자는 꾀를 냈다. 사드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양국 외교부 차관이 오가면서 이 문제를 조율 중이지만 설사 의제에서 빠진다고 해서 한미 간에 불신이 제거되겠는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난제다. 이 일은 다분히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새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중국은 압박의 강도를 높여간다. 거의 협박 공갈 수준이다. 나는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이 비장(秘藏)의 복안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는 헌법 66조에 적힌 대로 대한민국의 계속성(繼續性)을 책임진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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