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장애 자녀를 둔 후배의 선택

입력 2017-06-12 00:05:01

20년 전 나와 친했던 후배는 정신지체 장애의 아들을 낳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후배는 간호사인 아내와 고민 끝에 17년 전 미국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 장애 아들을 잘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한국의 장애 복지 수준으론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며칠 전 17년 만에 한국에 온 후배를 만났다. 후배는 세 살배기 때 이민 한 아들은 지금 스무 살 청년이 되었지만, 지적 능력은 그대로라 했다. 그래도 아들은 학교엔 꼬박꼬박 다녔다. 후배의 하루 일과는 아들을 학교에 등하교시키는 것부터 24시간 보살피는 보호자 역할이었다. 아들을 돌보는 보호자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정부는 연간 6천만원가량의 월급을 후배에게 준다고 한다. 물론 아들을 누군가가 돌본다면 월급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다. 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기에 월급은 아버지의 몫인 셈이다. 공무원 신분의 간호사인 아내는 미국에서만 17년 정도의 경력으로 현재 연봉이 1억6천만원정도라 했다. 그러니까 이 집안이 벌어들이는 소득은 약 2억원이 넘는다.

후배는 미국에서 상위 클래스의 소득자라지만 다른 자녀의 학비와 세금, 각종 물가 등을 고려한다면 부자처럼 살진 못한다. 즉, 소득만큼 지출이 많다는 얘기다. 다만, 중산층은 분명하다. 물론 여기서 그 집안의 고소득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후배가 받는 약 6천여만원의 월급으로 장애 아들을 돌보기 때문에 풍족하게 아들을 돌본다는 점이 중요한 얘기다. 대신에 후배는 월급을 받는 만큼 아들을 24시간 보호해야 한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꼼짝없이 자신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반면에 유럽의 장애 정책은 미국처럼 가족들에게 많은 돈을 주진 않는다. 또한, 누구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국가의 아낌없는 지원이 펼쳐진다. 예를 들면 장애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중증 장애우의 경우, 한 명당 적어도 4명에서 5명의 돌봄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가사 일을 돌보는 사람, 몸 관리를 해 주는 사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 등등 돌봄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지원금 역시 차등으로 월 100만원에서 200여만원을 준다. 교육, 의료가 무상인 나라에서 충분히 가족의 희생 없이도 자립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장애 정책은 지원금, 재활교육(프로그램), 고용, 편의 시설 등 다양화되어 있지만, 아직 넉넉한 수준이 아니다. 고작 수십만원의 지원금과 비장애인보다 나은 정도의 정책 수준이다. 대부분 개인의 몫이 더 크다.

17년 전 한국을 떠난 후배는 아들을 평생 돌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때로 비관하지만, 한국을 떠난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 듯했다. 나보다 흰 수염이 더 많아진 후배를 보면서, 언젠가 누구라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장애 자녀를 안심하게 키우는 날들이 오길 바란다. 또한 미국식, 유럽식, 아니면 혼합식 복지냐는 화두에 대한 논쟁을 더 적극적으로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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