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숨어든 깊은 숲 용이 승천하는 계곡 무수한 이야기 품었네
1)울진 왕피천
고대국가 왕 몸 숨길만큼 나무 울창
산길로 이어지는 탐방로 솔향 솔솔
왕피천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산과 산을 넘었다. 길은 가파른 산허리를 지났다. 좁은 곳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왕피천(王避川)의 어원을 실감했다. 옛날 고대국가인 실직국(悉直國) 왕이 피란한 곳이라고 한다. 왕이 몸을 숨길 만큼 산은 깊고 숲이 울창했다. 대구에서 출발해 3시간 만에 울진 근남면 구산3리에 도착했다. 제2생태탐방로 시작점인 '굴구지 산촌마을'이 있었다.
탐방로는 산길과 강변을 따라 이어졌다. 산길은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뻗었다. 촘촘히 자리 잡은 나무들이 깊은 그늘을 만들었고, 짙은 솔향을 뿜어냈다. 강변은 가팔랐다. 절벽에 굽은 나무가 매달리듯 서 있었다. 조각상 같은 큰 바위가 강 곳곳에 있었다. 물가에는 손안에 잡히는 작은 자갈이 가득했다. 강물은 강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협곡 곳곳의 바위는 용소와 학소대, 거북바위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밤이 되자 산촌마을은 암흑이 됐다. 강가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밤하늘은 마치 유리 가루를 잔뜩 뿌려놓은 듯 반짝였다. 별이 너무 많아 별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참 지나자, 하늘과의 거리감이 흐려지는 착시가 일어났다. 별이 쏟아질 듯 가까이 다가왔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개구리가 힘껏 울었다. 깨끗한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왕피천은 굴구지 마을 이외에 '삼근리 거점마을'과 '왕피리 체험마을', '수곡리 문화마을'을 끼고 있다. 이들 마을은 생태탐방로의 기점 역할을 한다. 삼근리는 군청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24㎞ 거리에 있다.
심현자 자연환경해설사는 "협곡과 산으로 둘러싸인 왕피천은 오지 중의 오지인 덕분에 자연이 잘 보존돼 있다"며 "숲과 강 등 오염되지 않은 생태뿐만 아니라 임광터 등 역사적인 흔적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청도 운문산
일연 스님 삼국유사 집필 시작한 곳
오랜 가뭄 탓 비룡폭포 물줄기 줄어
운문산은 대구에서 멀지 않았다. 차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했다. 먼저 운문산생태탐방안내센터(청도 운문면 운문사길 55)를 들렀다. 2층 전시실에 운문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형물이 있었다. 탐방로와 경관자원, 천연기념물, 동'식물 표본 등을 소개했다. 자연환경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뒤 사리암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사리암초소에서 삼거리초소까지 약 1.5㎞ 구간은 출입을 통제했다. 다만, 탐방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에겐 공개되고 있다. 생태탐방안내센터 우경덕 팀장의 안내를 받아 숲길을 걸었다. 계곡을 끼고 이어진 길은 평탄했다. 웃자란 침엽수와 촘촘하게 자리 잡은 활엽수가 조화를 이뤘다. 삼거리초소에서 고라니를 봤다. 길을 가로질러 산으로 뛰었다. 곧이어 담비 두 마리가 뒤따랐다. 우 팀장은 "담비가 사냥하려고 고라니를 쫓는 것 같다"며 "사람의 접근을 통제하고 생태를 잘 보존한 덕분에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거리초소를 지나자 길이 가팔라졌다. 계곡도 깊어지면서 협곡 형태를 띠었다. 학심이골에 다다랐다. 검은색의 큰 돌들이 계곡 곳곳에 박혀 있었다.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했고, 물고기가 이리저리 헤엄쳤다. 비룡폭포에 도착했다. 가뭄 탓에 물줄기가 왜소했지만, 비가 와서 물이 많으면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양과 같다고 한다.
운문산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으로 이뤄져 있어서 가파른 산지 특성을 보인다. 이로 인해 운문산~가지산~상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화산암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산골짜기를 따라 크고 작은 계곡과 하천이 뻗어 있다. 심심이골, 천문지골, 못안골, 큰골 등이 대표적이다.
역사문화도 느낄 수 있다. 560년에 창건된 운문사는 신라시대 고찰로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에 울창한 소나무 길은 해가 뜨거나 질 때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운문사와 운문산을 조망할 수 있는 북대암도 들를 만하다.
(3)상주 공검지
조선시대 3대 저수지 연못으로 조성
330종 곤충'62종 조류 등 함께 서식
해 질 녘 상주 공검지를 찾았다. 북상주IC에서 차로 3분 2.8㎞ 거리에 있었다. 서쪽 부곡리 하늘이 붉었다. 노을이 못 수면에 비쳤다. 우거진 수풀이 바람에 흔들렸고, 빛이 끓듯이 자글거렸다. 가로수가 일렬로 선 둑길을 걸었다. 새가 반겼다. 새가 짹짹거리며 못 위를 쏘다녔다. 물 위로 낮게 날다가 급하게 회전해 나무에 앉았다. 술래잡기하듯 떼를 지어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풀벌레와 개구리도 불협화음으로 울어댔다. 못 가장자리를 걸었다. 무언가 꿈틀대면서 첨벙 소리가 났다.
공검지는 속리산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 서부지역에 자리했다. 일대는 완만한 분지 지형이고, 논이 펼쳐져 있었다. 기원은 1천400년 전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농사를 위해 인공 제방을 쌓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3대 저수지 중 하나였다. 제천 의림지와 김제 벽골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부침도 겪었다. 1900년대 초 둑을 헐고 논으로 만든 탓에 못이 없어지다시피 했다. 1959년에는 공갈못 서남쪽에 오태저수지를 만들면서 못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그러다 상주시가 1993년 연못으로 조성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벼농사의 역사와 생태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11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환경부는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생태계 모니터링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종이 확인됐다. 식물과 곤충, 포유류, 조류 등 생물이 어울려 서식하는 습지 생태계의 보고(寶庫)가 된 것이다. 연꽃과 수련,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딱정벌레와 노린재 등 330종의 곤충이 살아간다. 원앙과 소쩍새,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62종의 조류도 관찰됐다. 수달과 고라니 등 포유류도 함께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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