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개방에 타들어가는 농심] 물 공급 못 해 농사 망친다

입력 2017-06-08 00:05:01

옥포면 화옥양수장·현풍면 원교2리양수장, 여기서 수위 더 낮아지면…

정부는 이달 1일 농업용수 이용을 감안해
정부는 이달 1일 농업용수 이용을 감안해 '양수제약수위'에 맞춰 4대강 보를 개방했다. 강 수위가 양수제약수위 밑으로 내려갈 경우 26개 양수장의 취수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보 관리규정에 따르면 이보다 훨씬 낮은 '하한수위'(보 관리를 위한 최저수위)에서도 양수장 등 취수시설이 운영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어 환경단체들은 26개 양수장에 대한 취수시설 보완 후 완전 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7일 대구 달성군 옥포면 화옥양수장 앞 낙동강에서 한 관리인이 보 상시 개방으로 수위가 다소 낮아진 취수시설(오른쪽 아래)을 가리키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무조건 열자고만 하지 말고 농민들 하소연도 들어주이소."

4대강 일부 보의 상시 개방이 이뤄지면서 보를 통해 농업용수를 공급받는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농업용수 공급에는 이상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취재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물 부족을 호소했다. 더욱이 현재보다 보 수위가 더 낮아지면 취수지점이 깊지 않은 일부 양수장은 취수가 불가능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안전한 식수원 확보를 명분으로 보를 더 개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수위 더 내려가면 양수장 멈춘다.

7일 오후 찾은 달성군 현풍면 원교2리. 한 농민이 하염없이 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파를 기르는 밭은 물기가 전혀 없이 바짝 말라 있었고, 양파 줄기는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정성 들여 키운 양파를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 농민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 농민은 "양수장에서 물을 퍼 나르지만 공급이 상당히 부족하다. 가뭄까지 겹치니 물 부족이 더 심해 작황이 지난해보다 30%나 떨어졌다"고 했다.

이곳 마을에서는 양수장 물을 서로 가져가겠다며 동네 주민들 사이에 '물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농민 국모(51'여) 씨는 "양수장 가까운 논밭은 물 확보가 유리해 물이 부족한 곳 농민들이 물을 가져가겠다며 다투는 일이 잦다. 양수장에서 나오는 농업용수는 한정돼 있어 민심만 사나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달성군 옥포면 화옥양수장 인근 농민들도 근심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수시로 강에 나가 수위를 확인하면서 물 걱정뿐이었다. 화옥양수장은 수위가 조금만 낮아지면 취수 펌프가 멈추기 때문에 이곳에서 농업용수를 공급받는 설화리 주민들은 한밤중에도 수위를 확인할 정도다. 설화리 이장 배정곤(55) 씨는 "지역마다 물 사정이 다른데 정부가 농민들의 사정을 좀 알아줬으면 한다. 언론에도 수질 관련 이야기만 잔뜩 다뤄지고 타들어 가는 농작물과 농민 마음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 마을은 양수장이 멈추면 아예 물 공급을 못 하는 농지도 많아 더 답답하다"고 했다.

일부 농민들과 양수장 관계자들은 눈에 띄게 낮아진 수위와 줄어든 농업용수를 실감하고 있었다.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죽곡양수장 인근 한 농민(49)은 "며칠 전 공무원으로부터 '수위가 내려가면 취수 펌프가 타버릴 위험이 있으니 수위에 따라서 펌프 운행이 조절되는 자동모드로 바꾸라'는 연락을 받았다. 바꾸고 난 뒤 눈에 띄게 농업용수 양이 줄었다"고 했다.

◆취수시설 설계가 문제, 216억원 들여 개선해야

정부는 양수제약수위(농업용수 취수에 문제가 없는 수준)에 맞춰 낙동강 강정고령보 수위를 1.25m 낮춘 것을 비롯해 달성보(0.5m)'합천창녕보(1m)'창녕함안보(0.2m), 금강 공주보(0.2m), 영산강 죽산보(1m) 등의 수위를 낮췄다. 농업용수를 취수하는 양수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위까지만 상시 개방을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농민들은 달성군 옥포면 '화옥양수장' '원교2리양수장' 등 4대강 사업 이후 만들어진 양수장은 보 수위가 조금만 낮아져도 농업용수 취수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과거 만들어진 양수장은 취수지점이 지하 깊이 위치해 있지만 이들 양수장은 보 수위에 맞춘 탓에 취수지점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다. 한 농민은 "양수장 취수지점이 얕은데도 보를 더 개방하라는 것은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며 "앞으로 가뭄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 개방 요구는 농민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도 양수장 취수시설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실제 올 2월 국토교통부, 환경부, 수자원공사 등이 공동으로 실시한 '댐'보'저수지 최적 연계운영방안 보고서'는 "양수제약수위 이하로 수위를 낮출 경우 취수가 불가능한 양수장이 26개이며 취수구 개선에 216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농업용수 공급 때문에 보의 완전 개방이 어렵다면 예산을 들여서라도 취수구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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