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6월의 비망록

입력 2017-06-08 00:05:01

'망각(忘却) 그리고 기억(記憶).'

한자를 뜯어보면 '망'은 잊음을, '각'은 떨쳐버림을 뜻하는 말쯤이리라. 망각은 한마디로 버리고 잊는다는 말에 가깝다. 또 '기'는 적는다, '억'은 간직해 잊지 않는다는 뜻임 직하다. 그런데 '망'에는 마음을 나타내는 심(心)이 하나, '억'은 두 개다. 그만큼 마음에서 지워 없애기 쉬운 일이 망각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이 기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이 이처럼 쉬우니 망각하지 않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다. 즉 '비망'(備忘)이다. 비망의 방법은 많고 다양하고 역사도 오래다. 기록과 조각은 가장 흔한 방법이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일기(日記)와 같은 비망록(備忘錄)이 그런 수단이다. 공인(公人)의 말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곧바로 비망이 된다. 공인의 말은 세상 사람 모두가 '인간 비망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 있는 공인은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인 6일, 전국의 보훈 가족을 '인간 비망록'으로 삼아 뜻있는 약속을 했다. 서울의 중앙보훈병원에 들러 애국지사를 만나 "지사님의 독립운동과 애국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조국이 끝까지 지사님을 기억할 것"이라면서 특히 "보훈만큼은 국가가 도리를 다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기억'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방문을 두고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보훈 행보가 관심거리다. 우선 지난 5일 차관급인 보훈처를 장관급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2004년 노무현정부가 장관급으로 올린 뒤 이명박정부 들어 다시 차관급으로 낮춘 것을 되돌린 셈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보훈처장으로 피우진 전 여군 중령을 발탁했다. 파격이었다. 주로 별자리 출신 군인이나 청와대 배경의 인물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자리를 차지하던 '악습'에서 벗어났다. 첫 여성 보훈처장의 탄생은 그렇게 이뤄졌다.

문 대통령의 보훈 관련 발걸음을 보면, 현충일을 맞아 애국지사나 보훈 가족을 향한 '기억'과 '애국', '국가 도리'의 강조와 약속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닌 듯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지켜지리라 믿는다. 물론 지키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수많은 보훈 가족과 국민이 '인간 비망록'이어서다. 6일 비록 많은 국민이 조기(弔旗) 게양을 망각했지만 문 대통령이 기억하는 '감동의 보훈'을 떠올리면 호국보훈의 달, 6월이 남다르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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