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실패였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차량 폭탄테러, 1998년 탄자니아와 케냐 주재 미국 대사관에 대한 테러, 2000년 예멘 연안의 미국 구축함 콜호에 대한 자폭 테러 등 '9'11'을 예고하는 수많은 신호가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국 정보기관들은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시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실패였다. 냉전이 막을 내림에 따라 대처해야 할 위험도 세계 공산화에서 테러 공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관의 일하는 방식은 냉전시대의 방식대로 관료주의와 비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냉전시대에 관료주의는 쓸모가 있었다. 소련 정보기관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점은 미국 정보기관이 시간은 걸리지만, 소련 정보기관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문해보면 됐다. 이렇게 국가 대 국가의 대결에나 맞는 방식으로는 알 카에다처럼 국가에 기반을 두지 않은 초국가적 테러조직의 움직임과 목적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비밀주의는 이를 더욱 부추겼다. 당시 미국에는 CIA(중앙정보국)나 FBI(연방수사국) 말고도 여러 정부 기관이 정보조직을 두고 있었다. 해군은 자체 정보시스템을 갖고 있었고, 연방항공국은 항공 안전과 절차, 공항 안전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비자 발급을 담당하는 국무부도 위험인물에 관한 정보를 관리했다.
하지만, 이들 정보는 뿔뿔이 흩어져 존재했을 뿐이다. 9'11 테러범들이 너무도 쉽게 미국에 잠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은 2002년 국토안보부(DHS)를 신설하고, 연방정부가 단편적 정보를 취합해 미지(未知)의 큰 정보를 알아낼 수 있도록 기존의 22개 기관이 DHS의 지휘를 받게끔 정부 조직을 개혁했다. 그 이후 테러가 빈발하는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테러사건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 개혁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낳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첫 개혁 조치로 국내 정보 담당관의 기관 출입을 전면 폐지했다. 정치 개입과 민간인 사찰이란 구습의 종식이란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이것이 주요 정보의 고립과 산재(散在)를 초래할 소지는 없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9'11 테러가 보여주듯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서 국경은 없다. 정치 개입 원천 봉쇄는 좋지만,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치밀한 조직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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