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마지막 수업

입력 2017-06-03 00:05:05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5월과 6월은 미국의 졸업 시즌이다. 미국 전역의 공항과 호텔은 졸업식에 참석하려는 가족과 친지들로 인해 호황을 누리는 시기이다. 필자도 지난주 의대 대학원을 졸업하는 아들 졸업식에 다녀왔다. 미국대학 졸업식에서 특징적인 것은 저명인사들을 초청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축사하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배우, 운동선수,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사들을 통해 인생의 빛나는 조언을 듣는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졸업식 축사를 소중한 인생 강의를 듣는 마지막 시간이란 의미에서 '마지막 수업'이라고도 부른다.

의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 측은 올해의 연사로 토마스 프리든 박사(Dr. Thomas R. Frieden)를 초청했다. 그는 수년간 에볼라, 지카, 메르스 등 인류에게 질병의 공포를 안겨다 준 전염병과 싸우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한 의학계의 롤 모델이다. 그가 의사 초년생 후배들에게 남긴 조언의 핵심은 "겸손하라"였다. "자신이 실수했을 때 인정하라. 자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많은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겸손이 의사의 첫 덕목임을 강조하며 축사를 마치자, 졸업생들과 하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다.

올해 미국은 트럼프 정권을 비난하는 축사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모교인 웰즐리 대학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스캔들을 닉슨 전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과 연관시키며 비난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하버드대학에서 트럼프 이민 정책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이런 미국 민족주의가 나라에 균열을 가져온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의로운 젊은이들의 용기를 호소하며 긍정적인 미래를 선포하며 끝마무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년 졸업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연설을 했는지 귀를 기울인다. 그러므로 유명한 축사는 학교를 세간에 알리고, 예비 입학생들과 동문 기부자들에게 관심을 유발시키는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에 대학은 연사 선정에 공을 들인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축사 중 가장 감동적인 것으로 애플의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가 암 투병 중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던진 명언 "갈망하라,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를 꼽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그가 창작에 대한 배고픔을 토로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장 파격적인 축사로는 재작년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뉴욕대학교에서 예술대 졸업생들에게 한 욕설 축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예술가의 길을 나서는 학생들을 향해 "너희들은 망했다"라고 말문을 열며 예술가의 길이 얼마나 많은 거절과 좌절을 맛보게 되는 길인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실패를 맛볼 때마다 "다음에"라는 주문을 외우며 꿈을 이루어 나가라고 조언을 했다. 그의 유머와 아픔이 버무려진 축사는 미국 예술대학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문학도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영어 '졸업식'(Commencement)이란 단어가 '시작'이란 뜻도 가지고 있듯이, 졸업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음 단계로의 출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수많은 청년은 졸업 후속 관문인 취업이란 문턱을 넘지 못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는 허니문 언약으로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는데, 이를 통해서 청년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나갈 수 있는 물꼬를 조금이라도 틀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청년들이 당당히 졸업식의 주인공이 되어 인생의 지침이 될 '마지막 수업'을 여유롭게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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