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선이 만난 사람] 이준석 바른정당 서울특별시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입력 2017-06-02 00:05:01

"똑바로 정치해라, 부끄럽지 않게" 아버지 말씀 늘 새겨

※이준석은… 서울과학고등학교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컴퓨터과학 학사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이준석은… 서울과학고등학교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컴퓨터과학 학사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사진=이무성 객원기자

우리나라의 시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 빨리 간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한두 달 지나면 사람들의 뇌리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정치적 파동이었던 국정 농단 사태도 작년 가을 태블릿PC 폭로 이후 반 년 만에 대통령 구속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유독 정치권의 세대교체는 더디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의 올드보이들에 식상한 지 오래다. 이준석은 몇 안 되는 '젊고 신선한 정치인'이다. 그가 처음 한국 정치계에 등장했을 때 겨우 26살이었다. 이제 정치계의 상수로 접어드는 시점에 선 그를 만났다.

-1985년생, 만으로 32세다. 왜 정치를 하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나는 상계동 출신인데, 내 어릴 적 그 동네 정서가 '신혼부부들이 가진 건 없지만 애 잘 키워보자'는 것이었다. 그게 되던 동네가 상계동이었다. 어찌 보면, 교육에 의한 신분상승의 기대감이다. 막상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보니 상황이 변했다. 요즘 학생들은 신분의 고착화를 믿는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며 교육봉사를 시작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치권에 들어왔다.

-정치를 생계형 직업이라고 생각하나, 거창한 소명이라고 생각하나.

▶직업으로 정치를 하고 싶진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공직자의 위치에 가더라도 자기 월급보다 많은 돈을 쓴다. 그걸 뛰어넘는 사명감이 없으면 정치를 하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온 흔치 않은 지금의 기회를 살려보고 싶다. 그나마 나는 방송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전이 아주 외롭진 않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청년 정치인들은 정말 힘들다. 지난 2012년 내가 처음 새누리당 쪽에 등장했을 때 나에 대한 맞상대 차원에서 모든 정당들이 한두 명씩 젊은 정치인을 띄웠다. 그런데 청년 정치인들이 난관을 넘어서질 못하더라.

이미 서양의 다른 나라는 당내에 인재육성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영국 캐머런 총리의 경우 하원의원이 된 지 4년 만에 당수가 되고 정권교체 후 총리가 됐다. 그전에는 15년 정도 보수당 생활을 했는데, 회사 다니면서 정치 이력을 쌓아갈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게 못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선 청년이 정당에 가입하면 보통 대통령선거 때 춤추고 몸을 흔드는 것으로 정치를 시작한다. 거기서 다 진절머리가 나서 떨어져 나간다.

-작년 총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패배했다. 인생에서 첫 실패 아니었나.

▶하나의 실패였다. 선거를 순탄하게 거쳐야 정치 행보를 밟을 수 있다. 내가 정치권에서 활동한 기간이 5년 정도 되는데 이쯤 되면 원내에 진입해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방송과 SNS로만 대중을 접하면 어느 순간 피로감이 생긴다. 예를 들어 '이준석이 말 잘하는 것 알겠다. 그 이상은?'이라는 요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꼭 당선되고 싶었고 당선 확신도 있었다.

-안철수 전 대표에게 패배하더라도, 밑져야 본전 아니었을까.

▶지려고 선거에 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져도 본전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꾸로 이기면 대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소위 '쉬운' 선거구에서 선거를 치러 원내에 들어갔다면 안철수 전 대표에게 지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례대표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체급을 올려서 도전했는데 욕심이 과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상계동'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보수'와 '금수저'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상계동은 제 고향이다. 그전까지는 하버드대학에 갔다고 하면 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국가 장학금을 받고 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또 국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정부에 줄을 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 같은 논란을 가장 깔끔하게 잠재우는 방법이 상계동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설마 서민 코스프레하려고 아버지가 30년 넘게 상계동에 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해명을 해야 할 사안인지 모르겠지만 상계동이라고 얘기하면 설명이 빨리 이뤄진다.

-과거 민주당의 김광진'장하나 의원 등과 긴밀히 교류했다. 심지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제일 존경하는 의원' 중 하나라고까지 얘기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정희 전 의원의 대북관을 공감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 입문 후 3일째 되는 날 예산안 처리 본회의를 본회의장에서 직접 봤다. 그때 이정희 전 의원이 단상에서 연설을 했는데 '맞는 얘기다'라고 공감했다. 이정희 전 의원이 주장하는 대북관이 싫다면 그것을 사회에서 없애는 방식은 선거밖에 없다. 선거에서 그게 부정을 당하면 그 당이 없어지는 것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너무 보수층이 안보일변도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의 안보관을 내 또래의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런데 반대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 대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입식으로는 안 되고 좀 더 세련된 보수의 접근 방법이 있어야 한다. 진보 진영의 경우, 어느 순간에 복지를 붙들었다. 보편적 복지, 문화 복지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보수가 지금까지 새로 발굴한 어젠다는 없다. 안보만으로는 갈수록 고립된다. '빨갱이' '종북'이라는 무기만 가지고 선거를 치르려고 하니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보수가 할 수 있는 주장은 작은 정부론 등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끝까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옆에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였나.

▶유승민 의원이 아버지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승민 의원이 내 나이일 때부터 그를 보아왔다.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행적을 직간접적으로 알았고, 그로 인해 확신이 있었다. 만약 그가 지금은 멋있는 사람이지만 어느 시점에 내가 알고 있는 꺼림직한 행적이 있었다면 오히려 남들이 다 좋다 해도 그 곁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거꾸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일하게 된 과정을 돌아본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만난 시간이 짧았다. 당시 그 시점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들어보고 공감해서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판단이 그 시점에서는 맞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내가 사람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하게 된다.

나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큰 정치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게 참 무섭다. 예를 들면, 지금 친박, 진박이라고 하는 분들과 사석에서 열 번 이상씩 식사하고 술도 마셨다. 근데 놀라운 것은 지금 진박이라고 하는 분 중 상당수는 나와 밥 먹고 술 마실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갸' '누나' 심지어 '가시나'라고 지칭했다. 진박이라는 분들이 경상도 분들이 많으니까 애칭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칭 진박 의원들은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유승민 의원은 나와 사석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호칭을 단 한 번도 가볍게 한 적이 없다.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께서'라고 호칭한다. 다만 비판할 때는 또 매섭다. 그런 것이 제 관점에서 누구를 믿고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기준이다.

-결과적으로 대구경북에서 유승민 후보는 '배신자론'에 시달렸다.

▶유승민 의원은 탄핵정국에서 언론을 만나 "공소장을 읽어보니 탄핵의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자들이 구속수사 여부를 물을 때 그는 "불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태도를 밝혔다. 그 과정에서 진박 의원들은 아무 말도 안 했다. 쥐 죽은 듯이 지냈다. 나도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뇌물죄 등 여러 혐의를 받고 있지만 나중에 형이 확정되면 사면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 봤을 때 과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내란죄에 초병살해 등 살인죄가 포함돼 있었다. 두 전 대통령은 8개월에서 1년 정도 복역하다가 석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피해자이긴 했지만 사면하겠다고 했을 때 국민적 반발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우리 국민 정서상 대통령 탄핵이라는 것은 대통령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대통령이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도 보여준 것이다. 그 이후 단계에서는 사면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참 오묘한 것이 재판이 진행될 때는 사면을 못 시킨다. 형이 확정돼야 사면이 된다. 박 전 대통령도 1심 재판이 끝나서 재판부의 결정을 인정한다면 문재인정부에서 통 크게 사면 논의도 가능하리라 본다. 잘 되면 올해 내로 이 사안이 종결될 수 있다. 하지만,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생각에 상고심까지 가면 문재인정부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럼 앞으로 2년까지 탄핵 정국의 그늘 속에서 국민들이 살아야 한다. 나라 전체적으로 손실이 크다.

-18대 대선 때와 19대 대선 때 본인이 지지한 후보의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무엇을 느꼈나.

▶지난번 대선은 수성전이었다. 이번에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다. 이번 경험이 매우 강렬했다. 왜냐하면 현역 국회의원 13명의 탈당사태도 있었다. 탈당 후 국민들의 반응은 탈당한 사람도 몰랐을 것이다. 유승민 후보와 같이 캠프를 하다 보니 작은 캠프에선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알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더라. 돈이 없어 TV광고를 못하게 됐는데 역으로 TV광고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도 느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재정립하는 기회도 됐다.

-바른정당의 미래가 밝은가.

▶결국은 구심점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뭉쳐 있느냐의 문제다. 바른정당은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뭉쳐 있지 않다. 오히려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TK에서 멀어지면서 생긴 집단이다. 민주당도 이번에 어떻게 집권했나? 작년 총선 이후 호남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수도권과 영남으로 저변을 확대하면서 전국 정당화했고 집권도 했다. 바른정당도 그 개념을 잡아야 한다. 그저께 당사에서 유승민 의원 간담회를 해서 지나가다가 들렀다. 저희가 동원을 안 한다. 버스비도 들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SNS에 글을 올렸을 뿐인데 사오백 명쯤 왔다. 보수 쪽에서 간담회나 팬미팅을 한다고 했을 때 동원 없이 이렇게 모이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유승민 의원 외에는 없을 것이다.

-최근 종편의 각종 시사토크 프로그램뿐 아니라 예능에까지도 출연한다. 이미지를 너무 소진시킨다는 생각은 없는가.

▶정치 영역에선 소모적이거나 소멸되거나 둘 중 하나다. 요즘 제 친구 손수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 그 친구도 자기 딴에 열심히 한다. 정치에도 계급 정년이 있다. 내가 정치권에 들어와 장외에서 이것저것하며 4, 5년 관심을 끌었으나 10년이 됐는데도 원내 진입을 못하면 계속하기 힘들다. 구조적으로 신선함이 소모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반대로 내 나이에 지역구 정치에 집착하면 소멸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장하나, 이동학 등 민주당 전직 국회의원들도 지금은 역시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다시 살아나려면 방송이라든지 계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봉주 전 의원같이 팟캐스트로 성공해 정치 전면에 등장하신 분들도 있다.

-대구경북민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부모님이 대구 출신이다. 아버지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똑바로는 정치해라. 아버지가 나중에 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네가 부끄럽지 않게 똑바로만 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이게 대구 사람들이 자녀 교육할 때 하는 이야기다. 정치할 때 그 얘기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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