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편지가 도착했다

입력 2017-06-01 00:05:00

유월은 그레고리력(Gregory曆)의 여섯 번째 달이다.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됨을 알 수 있고 지독한 불볕더위와 맞닥뜨릴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불편한 걱정들이 급격히 반전되어 오래전 내가 보낸 편지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하다. 그 옛날의 낡은 손 편지는 지금 곁에 없는 이들을 향한 그리움일 뿐 아니라 그 시절의 내 젊음까지 소환해준다. 그때 그 시절 '기약 없는 기다림'이 있었기에 그토록 오랜 시간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부름에 응답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정성이 아늑하게 서려 드는지 모른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쉽게 느껴보지 못하는 정서라 못내 안타깝다. 답장이 오기까지는 상대가 편지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확인도 안 되고, 답장이 올지 안 올지, 사뭇 헤아리지 못하는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마음은 점점 깊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마저 조금씩 넓어지게 된다.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다. 시인이자 외교관이며 공산주의자였던 '파블로 네루다'가 고향인 칠레를 떠나 이탈리아의 외딴 섬에 도착하며 시작되는 그들만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시인의 유명세 탓에 불어난 우편물량을 소화하고자 임시 집배원으로 고용된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네루다의 집으로 편지를 배달한다. 네루다와 가까이 지내며 섬마을 여자들의 관심을 끌고자 노력했던 마리오는 그와 우정을 쌓아가면서 시와 은유의 세계에 새로이 눈을 뜨고, 마침내 아름답지만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베아트리체 루쏘와 사랑을 이루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 자라고 있던 뜨거운 감성과 이성을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해할 때, 네루다는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가만히 감상해 보라고 조언한다. 네루다가 고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마리오는 자신만의 눈으로 차츰 인생의 메타포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자연의 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종소리, 또한 아들의 울음소리 등을 녹음하여 네루다에게 마지막 선물로 남긴다. 우정과 사랑, 성장을 담은 한 폭의 그림, 시(詩)와 같은 영화다. 드디어 20여 년이 지난 2017년 시인이 된 우편배달부의 편지가 다시금 도착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소통,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서 사랑과 우정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도 눈부신 햇살은 골고루 쏟아진다. 순박한 우편배달부 마리오처럼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진실을 노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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