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입력 2017-05-29 00:05:05

우리말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재치 있고 기발한 발상과 표현들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속담이다. 속담은 아마도 누군가가 우연히 상황을 아주 재치 있게 표현한 데서 생겨났을 것이다. 듣는 사람들마다 그 표현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 그 말을 이용해서 표현할 수 있는 사례가 많이 있어서 자주 쓰이게 되면서 속담으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속담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속담에는 처음 사용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회문화적 맥락은 늘 바뀔 수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속담에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에서 이몽룡이 거지꼴로 월매를 찾아와서 후딱 밥 먹는 모습에 대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재미있는 표현 같기는 한데, 금방 와 닿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남풍을 뜻하는 '마파람'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고, 게가 눈을 감추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게의 생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들을 분석해 보면 옛날 사람들의 생활을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옛날 사람들이 이 표현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남풍이 불 때, 즉 비 올 것에 대비해 게가 재빨리 몸을 보호하던 그 모습을 흔히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에는 게라고 하면 대게나 꽃게처럼 바다에 있는 게들을 많이 생각하는데, 참게의 경우는 옛날에 논에 흔하게 있었다. 농약을 많이 사용하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어서 그렇지, 논바닥에 있는 게들은 좋은 술안주로 이용되기도 했다. 속담을 통해 바로 그런 모습들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을 형식적으로 대충 할 때 쓰는 '처삼촌 뫼(묘)에 벌초하듯'이라는 속담도 잘 뜯어보면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 사람들은 처삼촌의 묘는 벌초할 의무가 없으니까 대충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처삼촌 묘를 벌초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기에 속담이 널리 쓰이게 되었나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조상들의 생활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아들과 딸이 유산을 똑같이 받았고, 그에 따라 제사도 돌아가면서 주관했다. 당연히 처갓집의 벌초에도 참여를 해야 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장자 위주의 상속 체제, 가부장제가 공고해지면서 남존여비 분위기가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이라는 속담에서는 처삼촌 묘 벌초의 의무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을 귀찮은 일로 생각했던 조선시대 남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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