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비, 든든한 힘이 된 '산티아고 순례길'…『렛츠고!! 줄리아∼』

입력 2017-05-20 00:05:01

렛츠고!! 줄리아∼/서순옥 지음/창조와 지식 펴냄

여행자들이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를 논할 때 페루의 '잉카 트레일' ,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트랙', 중국의 '차마고도'를 든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프랑스에서 스페인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든다. 앞의 세 길은 수려한 경치, 역사성, 청정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인정받아 이미 세계적인 길이 되었다. 풍광 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리 화려한 편이 못되지만 앞의 세 가지 덕목에 신앙과 사색이 더해져 최고의 흥행 코스로 부상했다. 매년 15만 명 이상의 신앙인, 트레커들이 이 길로 몰려든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산티아고 순례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쟁이 생활을 하던 서순옥 씨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직장에 사표를 내고 배낭여행에 나섰다. 800㎞ 길의 치열했던 여정과 32일간의 희로애락이 행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인생 나락에서 '배낭여행'으로 돌파구=삶이 견딜 수 없이 힘들 때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일탈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폼 나는 일은 아마 여행일 것이다. 아주 평범한 삶을 살던 저자는 5년 전 인생이 극도로 침잠하면서 걷기 여행에서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국내외 걷기 여행, 등산을 통해 몸을 만든 저자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사표를 던지고 본격적인 세계 여행에 나섰다. 그녀가 선택한 첫 번째 코스는 스페인에 있는 까미노 드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프랑스 루트, 즉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매년 수십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이 길에 한국인이 의외로 많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길에 왜 그처럼 한국인이 많은지를 고민했고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해지면서 좌표를 잃은 시민들이 안에서보다 밖에서 해답을 찾아나서는 것 같다"고 말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고비를 경험한다. 저자도 많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그 길 끝에서 저자는 새로운 빛을 보았고 희망을 부여잡았다.

◆순례 예비객들에게 좋은 가이드북=이 책은 한 개인의 순례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뒤에 올 트레커들을 위한 가이드 북으로도 유용하다.

저자의 여정은 프랑스 생장으로부터 레온을 거쳐 피니스테레에 이르는 33개 구간이다. 이 책에는 각 구간별 거리부터 숙박문제, 근사한 찻집, 마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행정보가 꼼꼼히 정리돼 있다.

각 여행지에서 들렀던 술집, 와인바, 식당을 소개하고 거기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함께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은 상상만으로 점포의 특징이나 구간별 편의시설을 쉽게 찾아내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책은 또한 근사한 인문지리서 역할도 하고 있다. 저자는 여행 출발 전 무려 30여 권에 이르는 순례기를 독파했고 몇몇 책은 몇 번씩 읽었다고 적고 있다. 명소나 유서 깊은 성당, 유명 건축물을 지날 때마다 저자의 풍부한 역사상식과 종교적 성찰이 어김없이 발휘된다.

◆"체중도 줄고 마음의 짐도 덜고"=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저자의 바지는 많이 헐렁해져 있었다. 누구나 30여 일 여정 동안 5~10㎏ 정도 체중이 줄고 옷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길 위에선 벨트 구멍이 당겨지는 물리적 변화만 있는 건 아니다. 육체만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내면의 무게도 많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종교적인 이유로든 개인적인 영성이든 아니면 단순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든 각기 다양한 이유로 까미노에 도착한다. 도착했을 때는 분명 떠날 때와는 다른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피니스테레에서 종점을 맞지만 길은 또 다양한 길로 이어진다. 그 길 끝에서 어떤 길로 향하고 어떻게 스토리를 입혀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길 위에서 배낭 하나에 들어갈 짐이면 충분하다는 걸 배웠어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길 위에서 배웠고 적게 소유하고 이웃과 나누는 소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죠."

갓 출판된 책을 기자에게 펴보이던 저자, 그녀의 눈 속엔 이미 다른 지도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299쪽, 1만6천원.

(TIP) 서순옥 씨의 산티아고 순례길 비용

유럽 왕복항공권 87만원(터키항공, 이스탄불 경유 파리~바르셀로나)

이지젯 항공권(파리~비아리츠) 8만원

32일간 길 위에서 사용한 경비 120만원

기타 기념품 및 잡비 5만원

총지출액 2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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