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실세가 없다?

입력 2017-05-18 00:05:00

정권 실세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자다. 대통령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실세는 음지에서 온갖 명예와 권세를 누린다. 정권 핵심부에서 힘을 쓴다고 전부 실세는 아니다. 여느 정권에서나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은 여러 명 존재한다. 이들은 실세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처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지고 마는 '일회성' 실세다.

진정한 실세는 대통령과 운명공동체처럼 가깝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대통령이 절대로 버릴 수 없어야 진정한 실세다. 당연히 실세가 나락에 떨어지면 대통령도 함께 추락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의 관계가 그랬다.

이명박 정권 당시 실세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1개월 보름 뒤인 4월 9일 18대 총선이 예정돼 있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반란'을 일으키며 이 전 부의장의 공천을 강하게 반대했으나, 이 전 부의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소장파 의원들은 "대통령의 형님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으나, 이 전 부의장 측은 "대통령의 형이 정치를 해야 로비와 청탁을 막을 수 있다"는 반론을 폈다. 이 전 부의장 측은 "백수가 되면 온갖 청탁이 쏟아질 것이다. 국회의원 자리는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버팀목"이라고 했다. 말장난일 뿐이고, 이 전 부의장은 권력이 던져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싫었다.

이 전 부의장은 6선 의원이 됐지만, 정권 말기에 감옥에 갔다.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니 노구에 감옥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된다. 역대 정권의 실세는 늘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실세가 되면 주위의 유혹을 완벽하게 뿌리칠 수 없기에 범죄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권 실세란 '5년간 권력을 휘두르다가 정권 말기에 감옥에 가는 자'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줄줄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라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은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고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고 했다. 정권 실세가 될 만한 인사들이 권력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 것이다. 일시적인 상실감은 있을지 몰라도, 5년 뒤에 감옥에 가거나 욕먹지 않게 됐으니 정말 현명한 선택을 했다. 이들로 인해 문재인정부의 앞날이 밝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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