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황선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제주도는 돌'바람'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로 불린다. 이런 제주에 남자가 사라진 이유가 '전복'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17세기 말까지 제주 해녀들은 미역이나 톳 같은 해초를 땄다. 전복 캐기는 포작인(浦作人)으로 불리던 남자, 해남(海男)의 일이었다. 잠수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전복을 캐는 건 목숨을 내놓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딴 전복은 왕실과 종친의 밥상에 올랐다. 진상품 공출 요구가 고통스러웠다는 데서 못된 손님을 '진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복 진상 요구를 이기지 못한 제주 남자들이 제주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1629년부터 200년간 제주에는 출도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미역 따던 해녀가 전복 따기에 동원됐다. 해양생물학자 황선도 박사는 제주 해녀의 역사를 전복 진상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풍미 가득한 해산물의 비밀
30년간 고집스럽게 우리 바다를 누빈 '물고기 박사' 황선도가 바닷속 생물의 비밀을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바다에서 길어올린 인문학 이야기다. 지구 상에 3만2천 종 이상이 사는 물고기는 척추동물 가운데 60%를 차지한다.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름보다는 그저 '물고기'로 불리고 여러 먹거리 중 하나로 규정된다. 심지어 해삼'멍게'개불은 횟집 상차림에서조차 밀려나 '스키다시'로 자리 잡았다. 우럭'광어에 밀려 '비주류' 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이들이 정력에 좋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새콤하고 알싸한 맛에 바다 향을 그득히 담은 멍게의 표준어는 '우렁쉥이'다. 방언이던 단어가 더 자주 쓰여 표준어가 됐다. 이런 멍게가 생물학적으로 절대 무시할 만한 해산물이 아니라고 한다. 생물학적 분류체계에 따르면 멍게는 척삭동물문에 속하는 미삭동물로, 인간의 배아와 같은 척삭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생명공학자들은 멍게를 연구해 인간의 초기 진화 관계를 규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억울한 '도루묵'의 어원에 대해, 저자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가 누명을 썼다고 결론을 내린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표현이 피란길에 도루묵을 맛봤던 선조가 전쟁이 끝나고 환궁해 다시 먹고서는 형편없는 맛에 실망해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루묵은 강원'함경도와 경북 북쪽 동해에서 잡히는 바닷물고기인데, 선조는 한양-평양-의주로 피란했으니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해산물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또 있다. 제주에서 최고급 어종으로 거래되는 다금바리는 사실 바릿과의 하나인 자바리다. 자바리는 다갈색 바탕에 6, 7개의 흑갈색 가로줄 무늬가 있다. 진짜 다금바리는 갈색 바탕에 진한 세로줄 무늬가 있으며, 위아래 양옆 끝이 희다. 이들 바릿과 어류는 '바리바리 많다' 하여 이름이 붙었지만, 이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몸값 비싼 생선이 되었다.
책은 이외에도 멸치처럼 생겼는데 멸치가 아닌 '꽃멸'(샛줄멸), 고등어보다 세 배 맛있다고 '삼' 자가 붙여졌다는 '삼치', 일생에 단 한 번 사랑을 쟁취하려고 대양으로 나가 평생 실향민으로 방랑하며 사는 '연어' 등 바다 생물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느림, 그리고 기다림…슬로피시(slowfish)
명태는 원래 이름보다 동태, 북어, 코다리, 황태, 먹태, 생태, 노가리 등 다른 이름이 더 친숙할 정도로 국내 소비량이 많은 생선이다. 우리 국민의 연간 명태 소비량은 25만t 정도지만, 우리가 먹는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산이다. 국내 해역에서 잡히는 명태는 1t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흔히 잡히던 명태'오징어 등 한류성 어족이 차츰 자취를 감춘 탓이다. 남획은 어족자원의 고갈을 심화시켰다.
올해 초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동해에서 잡힌 명태의 유전자가 2년 전 방류한 인공수정 1세대 명태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동해에서 잡힌 명태 중 유전자 분석이 가능한 67마리 가운데 2마리의 유전 정보가 2014년 국내 기술로 인공 배양해 방류한 명태와 같다는 것. 사라진 국민 생선 명태를 식탁에 다시 올리려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국내에서도 매년 5만t 정도 양식 명태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책은 해양생물의 생활사, 이들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하지만 저자는 책 곳곳에서 해양 생태계 변화에 주목하고 '공존'을 이야기한다. 황 박사는 다랑어의 양식, 연어의 치어 생산과 방류, 성게'불가사리 등 조식동물(해조류를 먹고사는 동물)의 구제작업을 통한 해중림 조성사업(바다 숲을 만들기 위한 해조류 이식작업) 등을 소개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1년 한국 곡물자급률은 26%로 178개국 중 128위, OECD 34개국 중 32번째다. 농축산물의 대외의존도가 높으니 바다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잡는 어업이든, 기르는 어업이든, 바다를 통한 먹거리 확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다.
사라져가는 물고기를 이야기한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지속 가능한 어업과 책임 있는 소비다. 그렇게 나온 것이 '슬로피시'다. 저자는 전통 어로를 예로 들며 '슬로푸드' '슬로피시'를 강조한다. 대나무로 발을 쳐놓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걸리는 물고기를 잡는 남해의 '죽방렴', 돌로 얕은 둑을 쌓아 밀물 때 들어왔던 물고기가 썰물 때 돌담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면 잡아올리는 제주의 '원담' 등은 빠르게 대량 생산하는 공장식 먹거리를 대체할 자연순응적 어업이다.
화려하고 기름진 식탁이 건강 밥상을 위협하는 시대다. 책은 바닷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시나브로 환기시킨다. 33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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