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수채화, 섬마을에 간다
현지인들 가장 좋아하는 사말섬
초록색 숲·에메랄드빛 바다 조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고향
군·경 중무장 가장 안전한 도시
다바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야심한 밤이었다. 호텔은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리 예약해 놓았지만 초행길이고 방향 감각도 사라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택시기사에게 지도를 보여주자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지만 차를 세워 몇 번이나 물어본 후에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호텔은 깨끗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이란 여행을 마치고 경유하는 길이라 시차와 장시간 비행기 여행 탓에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땐 이미 조식시간이 끝난 뒤였다. 하지만 코끝에 스치는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열대지방답지 않게 적당한 온도로 이방인을 맞아 주었다.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는 한반도 크기의 약 절반 정도이다. 주도인 다바오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고향이다. 수산물 수출의 전진기지로 무역이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중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치안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 할 만하다.
첫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해양 레포츠 당일 투어를 신청할 현지 여행사를 찾아 나섰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스쿠버다이빙 등 해양 레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가 있었다. 투어를 신청한 뒤 직원에게 맛있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닭요리 전문점을 소개해주었다. 대로변에 위치한 식당은 이른 점심시간이라 텅 비어 있었다.
식당 벽은 온통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무로 만든 식탁이며 의자는 낡고 오래되었지만 흉해 보이지는 않는다. 주인에게 추천받은 음식은 모양이 예쁘고 맛도 훌륭하다. 초콜릿 빛 양념을 두른 닭다리의 매콤 달콤한 맛에 산미구엘 맥주를 더하니 눈과 혀가 즐겁다.
허기를 채운 뒤 다바오 중심가에 위치한 피플 파크(people's park)로 갔다. 도심 한가운데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은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마침 군인들이 각종 화기를 전시하는 행사를 열고 있었다. 시민들이 직접 무기를 만져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에서 제대한 지 까마득하지만 내가 소총을 겨누자 군인들이 연신 엄지를 척 올려준다.
군인들의 칭찬을 뒤로한 채 민다나오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간이 운영하는 박물관은 민다나오섬 부족들의 생활상과 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에는 두테르테 대통령 초상도 크게 걸려 있다.
해질 무렵 다바오의 명물인 로하스 야시장으로 향했다. 도심 하천을 끼고 길게 늘어선 도로에서 매일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야시장을 연다. 각종 음식과 의류, 잡화 등 수많은 품목이 있으며 규모가 엄청나다. 2016년 9월에 강력한 폭탄테러로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군인들과 경찰들이 야시장 모든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철저히 검색을 한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서 꼬치구이를 시켰다. 시골 목욕탕에나 있을 법한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으니 기타를 든 무리가 다가와 노래를 부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학생들이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하고 있다기에 안심이 되었다. 연주 실력은 훌륭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학생들의 선한 웃음에 내 손은 벌써 기부금 통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다음 날 다바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하나인 사말섬으로 향했다. 사말섬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없지만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선호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3명이라 미리 현지서 먹을 음식과 맥주 등을 보트에 싣고 갔다. 투어를 도와줄 스태프가 3명이나 나와 손님 3명에 직원 3명이다. 한 명은 보트 운전, 나머지 두 명은 안전과 전반적인 편의를 제공한다. 몸에 문신이 가득한 40대 후반의 제임스는 웃을 때 앞니가 두 개나 빠져 개구쟁이 같아 보였다.
출발 후, 한 시간쯤 지나자 사말섬의 초록색으로 우거진 숲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수심이 10여m 이상 되어 보이지만 바닥까지 훤히 보일 만큼 맑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잠수하니 바닷속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보다 더 아름답다. 산호초 속에 빼꼼히 얼굴만 내민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긴 가시를 가진 성게 등이 우리를 반긴다. 미리 준비한 얼음은 사과박스만 한 통얼음이다. 조그만 보트에서 얼음 식탁 위에 올린 맥주를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자의 행복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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