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내린 쇠, 부드러움으로 굳다
현대조각가 4인 작품 전시
'철'(鐵)을 예술 작품의 소재로 이리 흔히 사용할 줄, 철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던 격변의 고대사에서는 상상이나 했을까. 기실 철광석을 녹여 농기구며, 무기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던 시절은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표현의 재료로 철을 다룬 건 불과 70년 전이니까.
포항시립미술관이 '철의 물성과 비물성'(Steel material & immaterial)전을 연다. 김주현, 노해율, 엄익훈, 이성민 등 현대조각가 4명의 작품 24점을 전시한다.
철은 우리 조각사에서 중요한 매개물이다. 굳어버리기도, 녹기도 하는 철의 물리적 성질은 한국전쟁 이후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려던 당시 조각가들에게 신선한 소재였다. 그러나 철이 주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바꾸기란 쉽잖았다. 철 조각의 움직임, 빛, 소리, 그림자 등 무형의 비물리적 성질이 강조되기 전까지는.
포항시립미술관에 설치된 24점의 '철과 그 친구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도 물리적 견고함 속에 스민 메시지, 부드러운 감성이다.
작가별 대표 작품은 우선 직육면체 철 파이프 기둥 10개를 바닥에 세워놓은 'One Stroke 01'(노해율 작)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뭔가를 이룬) 한 번의 쫘자작'이다. 그 '쫘자작'은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통해 균형과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같은 크기의 함석판을 연결한 '9,000개의 경첩'(김주현 작)은 사회 구성 요소들의 소통과 어우러짐을 나타내려 했다. 관람자가 거대한 생명체의 조직을 떠올렸다면 작가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한 셈이다. 엄익훈의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는 철의 물리적 성질보다 빛을 이용한 작품이다. 철로 만들어진 작품을 살피던 관람자도 작품을 통과한 빛의 뒷부분, 그림자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의 노림수다. 이성민의 'Pieta'(피에타)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피에타상(像)을 쇠로 재현했다. 다만 통상적인 철 조각 도구인 끌과 망치 대신 산소용접기의 힘을 빌렸다. 쇠는 불에 녹아내리며 기존 모습을 잃고, 새로운 형태로 재생된다. 마치 상처가 생긴 뒤 새살이 돋아나듯이.
전시는 7월 2일까지이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포항시립미술관에는 관람료가 없다. 문의 054)250-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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