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대추 색소로 섬유 염색…대구 농업의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와 혁신, 그리고 인간 삶의 방향에 관심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은 전문가 기고문도 자주 눈에 띈다. 선거를 코앞에 둔 대선 주자들 역시 4차 산업혁명의 핑크빛 전망을 실현하기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움직임으로 꽤 부산하다. 이런 가운데, 농업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이를 만나봤다. 그런데 그 직업이 참 생소하다. 식생활 소통 전문가 안은금주 빅팜 컴퍼니 대표다.
-자신을 식생활 소통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생소한 직업인데, 설명을 부탁한다.
▶한마디로 농업 현장의 스토리텔러, 농부들의 대변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식생활과 관련한 푸드 커뮤니케이터(food communicator)를 한국말로 풀어보니 식생활 소통 전문가이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방송 현장 취재기자, 즉 리포터라는 직업으로 2000년도에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현장을 누비며 시청자와 생산지에 있는 분들 사이에 중간다리가 돼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전달이 잘 되면 질 좋은 농산물이 잘 팔려서 시청자와 생산자가 함께 기뻤다. 반면, 전달이 잘못 되면 정보가 왜곡된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을 다녔는데 은사께서 "그것은 휴먼 커뮤니케이션의 한 분야이고 음식도 한 범주가 될 수 있다"고 한 얘기를 듣고 영감을 받았다. '내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정말 필요한 부분을 봤구나!'라고 생각했다.
-단도직입적으로, 앞으로 전망이 있는 직업인가.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 다른 나라에서도 음식을 매개로 한 소통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럼 분명히 지금까지는 없던 산업 영역이 생겨날 것으로 보았다. 한국에 없던 직업이라 더욱 기회로 봤다.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의 농촌 지역을 많이 돌아다녔으니까 이것을 잘 설계하면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처음에는 다들 나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나름의 매뉴얼 같은 것도 만들어보았고, 방송 리포터처럼 농부와 지역을 해설해보기도 했고, 설문지를 만들어 농민들의 반응과 매출에 대한 통계도 내봤다.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식생활 소통에 대한 특강도 꾸준히 해왔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었다.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호텔관광이나 식품영양학 분야 전공 학생들이 농촌을 잘 모른 채 졸업해서 영양사가 되고 외식 경영도 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런 경우에는 식생활 소통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고 공유경제 및 상생의 키워드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직업관이 더욱 뚜렷해진다. 이 직업은 미래에 꼭 필요한 직업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다.
-소통을 통한 식재료 유통이 핵심인 것 같다. 대기업이나 기존의 유통망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틈새시장과 기회가 있나.
▶본질적인 부분을 생각해보자. 기업들은 가급적 좋은 학교를 나온 인재를 선택하고 그들 역시 프랜차이즈 기업을 직장으로 선호한다. 그런데, 도시에서 성장해 조리를 배우지 않은 급식 세대들은 비록 음식을 예쁘게 만들긴 하지만 식재료 본질에 해당하는 내용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외식 산업의 틈새다. 2000년 이후 소비자들은 건강, 장수, 노화 방지 등을 음식과 연관시켜 추구한다. 그 답은 지역별로 좋은 자연환경에서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식재료에 있다. 외식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런 모든 식재료들이 어디 있는지 일일이 알 수가 없다. 또, 농부가 주인공인 재료 본연의 이야기를 접목한 식단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농부들의 판로에 대한 고민도 해결된다. 여기에 식생활 소통 전문가의 역할이 있다.
-결국 농촌이 잘돼야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농업이 전망 있다고 한다. 농촌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4차 산업혁명의 근원지인 독일의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표준인증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제조의 혁신이라고 하는데 공유경제의 진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내 것, 내 집, 내 자산, 나 개인의 만족도만 키우려다 보니 경쟁이 과열됐다. 그러다 이제는 서로 내려놓자고 하고, 해탈의 경지에서 행복을 느끼자고 한다. 그러나 서로가 무조건 양보하는 것은 어렵다. 보안과 소득 보전 등 첨예한 문제가 대립하기 때문이다. 즉, 각자가 노력해서 왔는데 이것을 누구에게 열어놓으라고 하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표준화가 그 대안으로 떠올랐다. 농촌의 미래 역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이를테면,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일 년 내내 마트에서 딸기를 산다. 쌓여 있는 다양한 브랜드의 딸기 중에 주로 가격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점점 딸기의 맛과 향도 선택하는 까다로운 사람으로 변한다. 한 농장에서 사계절 내내 원하는 딸기를 공급받을 수가 없다. 농장 입장에서도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봄 딸기, 겨울 딸기 등 시기별로 혹은 모양별로 그때마다 가장 적절한 상품을 내놓는 농가를 통해 딸기를 공급받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농촌 체험마을이 있다. 체험마을 사람들은 유치원과 학교 등 100명, 200명 단체 관광객을 힘들게 받고 열심히 하는데 손님은 줄어든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체로 견학 온 아이들은 두 번은 안 온다. 여기서도 같은 체험, 저기서도 같은 체험을 하며 한 관광지를 훑어 지나가면 모든 콘텐츠가 한꺼번에 다 노출되고 식상해진다. 그것을 공유경제 형태로 바꿔볼 수 있다. 여름에 숙박만 가능한 곳, 식사는 가능하지만 숙박은 안 되는 곳 등이 연계하고 그 자원을 공유한다. 그렇게 되면 계절별로 다양한 콘텐츠가 계속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다.
-농촌 현장이 변한다기보다 도시의 소비자들과 연계되는 방법의 변화가 4차 산업과 연관된다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젊은 사람은 떠나고 침체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선진국들도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가 극복했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농촌과 지금 농촌이 다르고 우리 아랫세대가 만날 농촌도 다르다. 과거의 세대와 아랫세대가 만날 농촌을 같은 연장 선상에 놓고 무엇이 좋다 나쁘다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농촌이 농촌다워지고 농촌의 소득을 높이는 고민을 한다. 과도기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탈농촌화였는데 2008년부터 그래프가 바뀌었다. 탈도시화다. 그리고 귀농이 더 많아졌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하는 1950년생 전후 세대들과 1960년대 초반 세대가 귀농귀촌을 많이 하며 이들이 농업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은 머리와 자본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지금 좌충우돌하면서 현지 토속 주민과 마음을 맞춰가는 상황이다. 이 과정을 극복하면 농촌과 도시가 서로 공존하는 사이클이 어느 정도 맞아질 것이다.
-그럼 실제 우리 농촌의 농부들은 행복한가.
▶어느 순간 많은 농부를 보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본인이 살아가야 할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초지일관이다. 내일 당장 할 일이 없어서 우울한 것이 없다. 대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본인만의 깨달음이 다 있다. 행색은 남루한데 그 웃음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것이 농부들의 얼굴이다. 물론 노동은 고되지만 농부들의 눈빛은 늘 뜨겁게 살아 있다. 인간으로 살아 있음을 뜨겁게 느끼고 인간 본연의 본성인 채집, 수렵, 의식주가 지금 내가 하는 행위로서 다 된다고 하면 인간으로서 더한 만족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점점 안전한 먹거리와 식재료에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앞으로 유통 현장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산업이 복잡해지고 과정이 많아지면서 점점 더 소비자들이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아졌다. 친환경 농산물 인증 농가에는 따로 인증번호가 있다. 인증번호를 조회하면 누가 언제 어떻게 생산했는지 생산 이력이 나온다. 소비자가 정보를 찾아가면 얼마든지 제품에 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깊게 관심 갖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이제부터는 지역에 가거나 음식을 먹을 때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식품 라벨을 들여다보기 권한다. 거기에는 제조원 생산자 연락처가 있다. 한 번 거기에 전화할 수도 있다. 하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나는 내가 먹었던 우엉이 너무 좋아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이렇게 전화해서 칭찬하는 사람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자기가 열심히 지은 작물에 대한 칭찬을 받는 것은 기쁜 일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적극적 소비자는 어느 때 누구라도 환영이다. 소비자가 관심을 가졌을 때 유통의 선명함이 생겨난다. 다시 말해, 주는 대로 먹지 말고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주체적으로 먹으면 좋겠다.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다 보면 나만의 평생 음식 백서를 만들 수 있다.
-식생활 소통 전문가로서 컬리너리 투어(음식문화관광)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음식의 특징은 무엇인가.
▶1990년대 말부터 음식관광이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컬리너리 투어리즘이 생겼다. 먹을 것은 많은데 잘 먹고 싶고, 산지에 가서 먹어보고 싶은 것이다. 본질에 대한 갈망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내 만족과 내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세계음식관광협회 에릭 울프(Erik Wolf) 회장의 말을 전달하고 싶다. 그는 한국의 음식관광 매력에서 사계절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으면서 삼면이 바다인데 서남해는 개펄이고 동해는 수심 3,700m로 깊다. 화산섬인 제주는 신대륙으로 토양이 검다. 전라남북도는 풍화침식이 많이 된 황토가 있고 전 국토의 70%는 산이다. 그러니 식재료가 사계절별로 지역별로 다양하게 산출되고 지역마다 종교적 밥상, 왕가의 밥상, 양반의 밥상, 노동의 밥상, 산촌 사람들의 밥상, 바닷가 사람들의 밥상이 각각 발달했다. 음식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한다. 그러나 에릭 울프 회장은 안타까움도 표시했다. 우리나라는 음식에 정성은 다하는데 서비스가 아쉽다는 것이었다. 특히 음식소통과 설득 기술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맛있지!"라고 반응을 강요한다. 한 숟가락 뜨고도 "맛있지?" "우리 것이 최고야"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음식에 대한 소통 기술을 몰랐던 것이고 배우면 된다. 묻혀 있고 잘 가꿔야 할 음식관광 자원이 많다.
-대구경북은 정치적으로도 보수 색채가 있는데 음식도 그런가.
▶경상북도 내륙은 유교 성향이 강한 문인들의 집단문화가 짙다. 그래서 경북 내륙은 관혼상제 통과의례 예법을 굉장히 규율화해서 제사 음식 등에 적용했다. 그것을 하나의 양반문화로 따라갈 수 있게 했다. 물류가 발달하면서 섞였을 뿐 예전 산간 지역은 외부와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경북 내륙의 맛을 표현하자면 스타카토와 같이 찌르는 맛이다. 음식을 먹었을 때 이것은 마늘, 이것은 고춧가루 이런 식으로 확실해야 한다. 뭉근한 맛보다 딱딱 제 맛이 나야 한다. 이른바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은 안 된다.
-대구는 섬유도시로 유명했지만 알고 보면 각종 과일들도 많이 난다. 대구경북 농업의 비전은 어디에 있을까.
▶대구는 달성군이라든지 경산 등지에서 농사를 짓는다. 가령, 경산에는 대추가 있다. 앞으로 대구의 농업 영역에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참여해서 새로운 스타트 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섬유의 색상을 내기 위해 화학적 컬러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도시 주변의 농장에서 과일로부터 색소를 추출해 섬유를 염색하고 고급화하는 식의 시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을 충분히 이끌어갈 잠재적 자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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