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거는 상대성이 지배하는 의사 결정 절차라고 말한다. 한 명의 뛰어난 인재를 절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물 중 조금 더 낫다고 여기는 사람을 뽑는 절차라는 뜻이다. 더 낫다는 판단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도덕성, 호감도, 정책 수행 능력 등 여러 항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유권자의 결정을 좌우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가 '고통지표'(Misery Index)다.
고통지표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지수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여러 인물 중 고통지표를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한 인물과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금과 금리 등 '경제'를 가장 변별력 있는 무기이자 평가 잣대로 보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이 선거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이 나온 배경이다.
경제결정론이 부각된 것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중반부터다. 선거 때마다 자유당과 보수당은 경제를 놓고 싸웠다. 1880년 영국 총선 때 자유당은 "보수당의 집권은 무역수지 악화와 높은 금리와 무거운 세금을 부릅니다. 이에 넌더리가 나지 않는다면 보수당에 표를 주세요"라며 보수당의 경제 실정을 파고들었다.
1978년 노동당 소속의 제임스 캘러헌 영국 총리가 내각회의에서 한 말도 의미심장하다. "정부는 국민 주머니에 돈이 있을 경우에만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겠지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카터 대통령과 레이건이 맞붙은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의 승부수도 경제였다. 레이건은 TV토론에서 인권을 앞세운 카터에 맞서 "여러분은 과연 4년 전보다 잘삽니까? 4년 전에 비해 실업자가 줄었습니까? 누구를 찍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라며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1992년 미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경제결정론과 고통지표가 모든 상황에서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변화와 희망을 강조한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좋은 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트럼프의 승리 요인에는 경제 상황도 포함하지만 백인 우월주의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20일이 채 남지 않은 우리의 대선 양상은 레이스에 뛰어든 15명의 후보 수만큼 복잡하다. 경제와 안보, 적폐 청산, 통합 등 선거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진보 진영에서는 지려야 질 수 없는 게임을 확신하고 있다. 과연 국민이 체감하는 고통지표가 선거 결과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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