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뉴스의 옷을 입은 루머

입력 2017-04-20 00:05:01

'카톡 카톡'. 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스마트폰을 열었다. 순간 당황했다. '5'18 개입 북한군 증언' '미 의회 충격 폭로, 문재인의 핵 개발 지원 의혹' '5'18 유공자 특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들이 뉴스로 둔갑한 내용이었다. 가짜 뉴스가 판친다더니 경악 그 자체였다. 친구에게 좋은 말로 메시지를 보내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기자인 네가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가짜 뉴스를 만들지 말고 진짜 뉴스를 만들라"고 열변을 토하며 전화를 끊었다. 황당한 주말이었다.

지난주에는 북한 폭격설, 김정은 망명 유도설 등 가짜 뉴스로 한반도 위기설이 증폭돼 온 국민이 공포에 떨었다. 북폭설은 "미국이 4월 27일 그믐을 맞아 스텔스기로 북한을 폭격한다"는 내용이며 김정은 망명설은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김정은의 망명을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이들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 등 최근 정세를 담아 사실인 양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

가짜 뉴스가 논란이다. 언론 보도처럼 포장된 거짓 정보가 활개치고 있다. 개인이 조작한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실로 호도되고 순식간에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어떤 해석을 참고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일은 훨씬 더 힘들어졌다.

국내에서 가짜 뉴스가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과 촛불집회가 계기였다. 일부 극우 인터넷 매체가 최순실 태블릿PC가 조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며 가짜 기사들을 쏟아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중앙선관위와 검찰, 경찰이 가짜 뉴스 전담 조직을 만들어 대응할 정도이다.

가짜 뉴스는 허위 사실을 포장해 진짜 뉴스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그 폐해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진실이 속옷을 입기도 전에, 거짓말은 지구의 저편까지 간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기술의 발달은 진실과 거짓을 똑같이 빠르게 전달한다. 시민의 판단을 왜곡해 이념 대립을 조장하거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려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도 있다. 특히 대선 경쟁에서 쏟아지는 가짜 뉴스들은 건강한 공론 문화와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저해한다. 그래서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치명적인 위협 요인이다. 또 가짜 뉴스는 소문이나 유언비어와 달리 정식 기사와 같은 모습을 띠고 공공연하게 유통된다는 점에서 한층 더 악랄하다.

가짜 뉴스의 발생은 주류 언론의 탓도 크다. 언론들이 자사 이기주의와 정파주의에 빠져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해온 사실이 가짜 뉴스를 확산시킨 원인일 수도 있다. 최근 뉴스 소비자들이 직접 좋은 뉴스를 선택하자는 뉴스 리터러시(News Literacy)운동이 점차 확산되는 점은 다행이다. 저널리즘의 복원을 위해선 진짜 뉴스가 높게 평가받고 가짜 뉴스는 퇴출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를 구분하는 독자들의 미디어 이해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펴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시민도 뉴스에 대해 권리와 책임을 가진다"며 뉴스 소비자 계몽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대한민국을 살릴 힘은 국민에게 있다. 허위 정보에 대한 개인의 균형 잡힌 안목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국가의 새로운 미디어 정책도 더욱더 중요해졌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가짜 뉴스의 최초 작성자는 물론 악의적, 조직적으로 유포한 사람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가짜 뉴스 생산은 표현의 자유가 아닌 범죄행위이다. 공동체를 분열시켜 무너뜨리는 암세포와 같은 존재이다. 진실이 뭔지 헷갈리는 세상,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되고,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탈(脫)진실의 시대를 끝낼 주역은 바로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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