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02일째 되는 날

입력 2017-04-20 00:05:01

"하루는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었지// 하루는 그늘도 없는 벚나무 밑에서/ 혼자 울었지// 며칠 울다 고개를 드니/ 내 나이 쉰이네// 어디 계신가…… 당신도/ 반백일 테지?"- 윤제림 '쉰'

누군가와 함께 혹은 혼자서, 울었던 일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마득하다. 여기저기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어느 바람에 꽃비로 흩뿌려지는 이 봄도 이제 끝자락이다. 기뻐서 혹은 슬퍼서 우는 일 따위 오랫동안 잊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쉽사리 지나가고 부서지고 깨지며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시간이 끝내 냉정한 미소를 건넨다. 그토록 빛나던 서정(抒情)이 점차 빛을 잃어 가도록 연일 쉼표 없이 반복되는 잇단음표들, 삶이 이토록 치열해야만 했을까?

지난 목요일 어느 모임 자리에서 지인이 "오늘이 벌써 올해가 시작되고 102일째 되는 날인데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른 새벽마다 법문을 필사(筆寫)하는 그이는 매일 노트에 날짜를 표시하다 보니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되었다며 도대체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단다. 거기에다 해를 거듭할수록 느끼는 속도가 가속된다는 말은 이구동성 입을 맞춘 듯 한목소리가 분명하다. 어림잡아도 3분의 1에 해당하는 날짜가 누가 훔쳐간 듯, 아니면 빼앗긴 듯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날그날 반복되는 삶이라고 그저 그러려니 하다 보면 정말 그러려니 하는 삶으로 살아질 것 같은 두려움도 우리는 약속처럼 동시에 느낀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은 책을 읽는 일이다. '대구문화' 4월호 '언제나 열린 공간'이란 코너에 수창동 대구예술발전소 북 라운지 '만권당'이 소개되었다. 집에서 좀 멀다는 이유로 망설이다가 '발전소'와 '만권당'이란 두 단어에 이끌려 찾아갔다. 누구나 처음에는 숫자 '10,000'을 생각하고 기대를 하지만 다른 유래가 있다는 것은 잡지를 통해 이미 알았다. 그것은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세운 도서관으로, 성리학을 연구하던 곳을 뜻하고, 또 하나는 1920년 독립운동가 문영박 선생이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에 세운 문고를 뜻하며 이곳은 국채보상운동의 발판이 되는 토론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만권당'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시민과 예술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예술 관련 서적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무엇보다 반가웠다.

흰색과 검은색의 반반 정도인 머리털도 반백이고 백 살의 반인 쉰 살도 반백인데, 어디 계신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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