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조달 정책과 실력파 중소기업

입력 2017-04-17 00:05:01

영국 작가인 로버트 갤브레이스.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해리 포터'의 저자로 유명한 J. K. 롤링의 또 다른 이름이다. J. K. 롤링은 2013년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추리소설 '쿠쿠스 콜링'을 펴냈다. 자신의 명성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바람으로 책을 썼다. 일종의 '히든 writer' 또는 '복면서(書)왕'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책 발간 후 3개월 동안 1천500부밖에 팔리지 않았는데, 우연히 언론에 정체가 밝혀진 후에야 판매가 급증하여 100만 부를 돌파했다. 실력 못지않게 대중의 인지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주변의 창업'중소기업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이용자 편의를 높이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혁신적인 신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들은 익숙하고 친밀한 기존 브랜드 제품에 손이 먼저 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기술 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사업화에 성공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젊은 기업이 초반의 어려움으로 인해 간발의 차이로 계곡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것을 막는 데 바로 정부의 역할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가 아직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에 초기 판로를 마련해 주어 향후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등 공공기관이 조달시장을 활용해 선도적으로 우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이 다져진 내수 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지난가을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있는 한 특장차 제조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노면청소차, 제설차 등을 생산하는 이 업체는 공공조달 시장에서의 국내 중소기업 우대 정책에 힘입어 외국산이 휩쓸고 있던 국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차츰 높여나갔다. 나아가 설계부터 완성차까지 생산 전 공정을 자체 운영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결국에는 국내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다. 이제는 인정받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베트남, 알제리 등 10여 개국에 생산품의 20%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과 고용 증가율이 20%를 훌쩍 넘는다고 하니, 가히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 하겠다.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창업'벤처기업 판매 전용몰인 '벤처 나라'를 구축하였고, 안정적인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의 바우처 방식 수출 지원 서비스도 새로 도입하였다.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올해로 18돌을 맞는 '코리아 나라장터 엑스포'이다. 이번 주 4월 19~2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되는 이 행사는 우수'신기술 제품 전시를 기본으로 구매 교육 프로그램, 구매 상담회, 해외 바이어 상담회, 해외 진출 설명회 등 다채로운 부대 행사를 통해 탄탄한 실력파 중소기업들이 애써 개발한 제품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전망이다.

J. K. 롤링은 정체가 드러난 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명성이나 기대감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평가받고 싶었다"고 밝혔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분칠한 얼굴 대신 민낯의 실력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우리 기업들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 기업들이 창의와 혁신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펴고 경쟁할 수 있는 그날까지 정부는 늘 함께 달리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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