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청송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조부모님과 6명의 고모, 삼촌들, 연년생의 오빠와 남동생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부모님과의 독대가 참으로 별스러운 기억인 셈이다.
물론 여행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참으로 긴 부모님의 용무가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강가 '민물 매운탕'이라고 크게 적힌 흰색 간판 아래로 주말 저녁을 즐기러 나온 가족들의 왁자한 웃음소리와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매운탕의 열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의 메뉴는 잉어찜. 20여 년 전이라는 세월을 생각하면 꽤 비쌌던 3만원대의 특별 메뉴였다. 팔뚝만한 길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잉어 위로 마늘, 고춧가루를 기초로 한 양념이 오르고 접시 바닥에는 잉어찜을 만들어내면서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이 깔렸었다.
젓가락으로 푹 찌르자 탄력이 느껴지는 흰 살을 양념에 찍어 입 안에 넣으니 고소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 가득이었다. 생선을 뜯고 남은 양념을 국물 위로 떨어뜨려 비벼먹는 밥맛은 어찌나 좋았던지 보는 눈이 없었다면 접시를 핥아먹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을 끝으로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못했다.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고 시간이 흐르니 부모님도 그 집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일부러 그 집을 찾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찾지 않는 것이란 말처럼 지금의 그 집이 예전의 그 집은 아닐 테니까.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특출난 재능이 없던 나에게 엄한 부모님은 항상 어렵고 먼 존재였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나는 난생처음 부부의 재치 있고 명랑한 고명딸 노릇을 하며 1박 2일을 보냈고 그날 그 음식은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방증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냥 동네 중국집의 자장면이었대도 나는 아마 모든 것이 좋았을 것이다.
서로 지켜야 할 선 없이 너무나 가까워져 무시하고 뒤로 미뤄두기 쉬운 것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일견 찌질하고 궁상맞아 보이는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일상 속에 묻혀 의미 없이 사라져간 시간을,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사랑은 표현하는데 의미가 있다. 항상 옆에 있는 듯 보이기에 더욱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한 행동으로 "넌 내게 특별한 사람이야"를 표현해야 하며, 추억을 쌓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모든 에너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모든 사랑받았던 기억과 추억은 앞으로 닥칠 모든 힘든 시간에 마술처럼 나타나 다시 꿋꿋하게 나아갈 힘과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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