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입력 2017-04-14 00:05:00

'차기 대통령, 국민에게 양보·인내 요청할 수 있는 용기 필요"

김병준은… 前 대통령 정책실장,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대통령 권력』저자.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김병준은… 前 대통령 정책실장,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대통령 권력』저자.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장미 대선'이 한 달도 채 안 남았다. 그런데 대통령 파면과 구속 등 전직 대통령 관련 빅뉴스가 이어지다 보니, 국민들의 관심은 새로운 대통령 선출에 온전히 모아지지 못했다. 역대 가장 콘텐츠가 부실한 선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때야 하는지 국정 경험이 풍부한 김병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현재의 상황은 안보, 외교, 경제 삼중고(三重苦)의 복합 위기다. 차기 정부는 인수위도 거치지 않은 채 5월 10일 출범한다.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와 가장 중요한 과제를 하나씩 꼽아주신다면?

▶가장 시급한 것은 한반도 4월 위기설 등 안보 문제 해결이다. 얼마 전 미'중 정상회담이 공동기자회견이나 합의문 없이 끝났다. 호주로 향하던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영해로 오면서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이 임박했다는 등 억측이 떠돌았다. 정부는 시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안보 위기에 대한 우려는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런데 그간의 온갖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가다 보니, 최후의 수단으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것은 북핵,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먹고사는 문제, 일자리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일자리 문제는 간단치 않다. 기존 산업의 자동화, 기계화, 전산화는 일자리를 줄인다. 결국 서비스산업이든, 정보통신(ICT)산업이든, 4차 산업혁명이든 새로운 산업이 나와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말 새로운 산업에 맞는 노동력과 근로자를 양성해야 한다. 한편 철강, 조선 등 경쟁력이 약화된 부문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는 자본시장의 흐름도 새로 만들어 내야 한다.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다. 결국 산업구조 개편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존 산업에서 퇴출되는 인력을 직업훈련과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보통의 각오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 감각을 꼽았다. 차기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어떤 것들인가?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 이외에 지금 특히 필요한 것은 용기다. 무슨 용기냐 하면 국민에게 양보와 인내를 요청할 수 있는 용기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자꾸 뭘 해 주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현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좀 여유 있는 분들에게 양보를 요청하고, 조금 어려운 분에게 인내를 요청하면서 국가를 재구조화해야 한다. 이것이 진짜 용기다. 여러분들이 참아주고 양보해 주면 5년 뒤에는 반드시 이러이러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비전과 전략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국가를 위해 뭘 할지 고민하자"고 호소하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 지도자들은 그런 준비가 안 돼 있다. 전부 뭔가 해 주겠다는 말만 한다. 걱정이다.

-최근 출간한 저서 '대통령 권력'에서 권력에 대한 속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은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권력이라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칼날같이 보인다. 센 것은 맞지만 손잡이가 없는 양날의 칼처럼 위험하다. 권력을 잡는 순간 오히려 힘이 빠지고 자기가 다치기 시작한다. 이전에 시빗거리가 안 되던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권력을 행사하다 보면 그 칼이 부메랑이 돼 어느새 자기 몸속으로 파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 중에 성한 사람이 없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람도 다치고 감옥 가고 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따라서 양날의 칼을 쥐고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기 전까지 권력을 쥐어서는 안 된다. 본인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해진다.

-책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또 발견했다. "권력은 잿빛이다. 재력, 경영권, 행정권, 가부장권 등 크게 보면 세상의 모든 힘이 그렇다. 겉으로 화려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속살은 잿빛이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인가?

▶개인적인 관찰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후반기에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늘 괴로워했다. 특히 마지막 1년은 가슴이 아파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대연정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에 제의했을 때 마음이 어떠했겠나? 국정 운영의 근본적 한계를 절감하고 절박한 심정에서 "원 포인트 개헌 등 몇 가지만 동의해주면 야당이 권력을 다 가져가도 좋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본인이 소속돼 있던 정당에서도 비판을 받았고 한나라당으로부터도 거부를 당했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나. 그것이 임기 말까지 이어졌다. 퇴임 이후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고통이 있었다. 그래서 잿빛이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지 모든 대통령이 그러한 전철을 밟아 왔다. 앞으로의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헌정 질서, 국정 운영 틀을 바꾸지 않으면 불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이번 국정 농단 사태는 탄핵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국가 운영 구조를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사람의 문제도 있지만 제도와 운영 체계의 문제가 크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용기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양보와 인내를 요청하는 리더십은 우리 정치 풍토에서는 나타나기 힘들다. 그런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죽어버린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이 후보가 된다. 우리는 늘 실패한 지도자의 자질 부족을 탓하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과 후보가 되는 구조와 풍토가 정말 문제다. 국정 운영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국가를 제대로 개조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말의 촛불명예혁명은 4'19혁명과 6'10항쟁에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4'19와 6'10 이후에는 개헌이 있었다. 이번에는 차기 정부에서 하겠다고만 하는데….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려서는 또 다른 불행이 온다. 국가 운영의 기본 체계를 바꾸는 개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 핵심은 국회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과감한 수술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민적 불신이 높은 국회에 권한을 더 줘도 괜찮나?

▶개헌을 논할 때 흔히들 권력 구조 개편이 핵심이라고 하는데 실은 책임 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국회와의 협력 없는 국정 운영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국회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까 문제를 못 본다. 책임을 져야 비로소 문제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다. 국회가 행정권까지 가지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진영 논리, 패권 정치가 사라지고 협치와 합의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해소가 정치 개혁의 가장 큰 과제라는 지적인데….

▶그렇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까지만 하더라도 권한과 책임이 일치했다. 모두 대통령에게 있었다. 그런데 현행 체제에서는 권한은 국회와 대통령이 나누고, 책임은 대통령이 다 진다. 그래서 생산적인 정치가 안 되고 허구한 날 싸움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다시 권한을 몰아줄 수는 없다. 시장과 공동체가 이만큼 발달한 나라에 대통령이 책임과 권한을 다 가지면서 국가를 운영할 수는 없다. 국회를 행정에 참여시키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저런 국회에 행정권까지 주느냐고 걱정하지만, 말썽을 피우는 아이일수록 책임을 더 부여해서 그 아이가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분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길도 열린다. 국회의원들의 정책적 안목과 수준도 높아진다.

-저도 국회의원 시절에 "국회의원은 야당 의원이 훨씬 낫다. 책임질 필요가 없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해도 되니까"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협치와 연정을 해야 한다. 한 집단이 전권을 가지고 하는 것보다 조금 이질적이지만 서로 책임을 나누다 보면 무조건 반대는 못 하게 된다. 어떤 분들은 미국은 연정을 안 하지 않느냐고 지적하는데, 미국은 연방국가로 지방분권이 너무 잘 돼 있어 국가 전체로 보면 종적인 차원에서 상당한 협치가 이뤄지고 있다.

-지방자치분권의 선구자 역할을 해 오셨는데 대통령 권한의 국회 분산도 중요하지만 중앙 권력의 지방 이양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 아닌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지방정부라는 표현이 나오도록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지방자치를 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이해하는데 전혀 아니다. 진정한 분권을 해서 유럽의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보충성의 원칙, 즉 내가 안고 있는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는 일단 스스로 해결하고 처리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 다음 헌법에 이 원칙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후 중앙집권적 체제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위헌이 된다.

-권력은 부모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성계와 이방원이 그랬다. 반면,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새로운 발상도 있다. 한국 정치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리 큰 권력을 쥐었다 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 무서운 칼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찌른다. 그게 아니라 분권과 협치를 통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국민 지지가 강화돼 권력 기반이 튼튼해진다. 이제 그런 시대로 가야 한다. 획일화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화합할 수 있고 공동의 가치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국가 전체적으로 더 큰 권력이 작동하는 셈이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국민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쁜 일 속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최근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지역 대립 구도가 사라질 징후가 보인다. 절호의 찬스 아닌가?

▶지역 대립 구도는 우리 사회의 정책적 담론이나 정치 발전의 수준을 낮추는 중대한 요인이었다. 그게 약화되고 있으니 너무 반갑다. 지속될 수 있을지 아직까지 잠재적 위험 요인이 남아 있지만, 이 절호의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한 번 자리 잡고 나면 오래갈 것이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 민심이 보수정치의 몰락으로 표류하고 있다. 한국 보수의 건전한 재건을 위해 TK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대구경북에 다양성이 부족하다. '우리가 남이가', '의리' 등을 내세워 한쪽으로 몰린다. 세상이 복잡해졌다. 뭐가 확실한 정답인지 알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아닌 것이 많다. 지금은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아닐 수도 있다. 대구의 캐치프레이즈가 '컬러풀 대구'다. 더욱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양화 이후의 과제는?

▶이번 대선을 넘어 국가 경영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데 중심적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특히 새로운 지방분권시대를 만드는데 앞장서 주기를 고대한다.(이 대목에서 목소리 톤이 약간 높아졌다. 참고로 김 교수는 경북 고령이 고향이다.)

※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은 4월 15일 오전 9시 30분 TBC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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