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교육칙어, 아이들 입을 통해서는 듣고 싶지 않다

입력 2017-04-11 04:55:01

교육칙어는 법령 아닌 천황의 말

오랫동안 왜곡된 애국으로 무장

아이는 무지한 세상을 부술 희망

군국주의 교전 세뇌해서는 안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열차의 각 칸을 통해서 이 사회를 조명했는데,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어린아이들이 절대자 윌포드와 엔진을 찬양하는 교실 칸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무서운 세뇌작업이 천진난만하게 그려지고 있는 칸에서 나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벚꽃이 만발한 지금, 또 하나의 교실 칸이 나를 경악하게 한다.

아베 총리 부인을 명예교장으로 위촉했던 모리토모 학원 산하의 유치원에서 원생들에게 '교육칙어'를 매일 아침 암송하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양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은 "교육칙어의 정신인 효행과 우애 등은 지금도 중요한 것이니 재평가해야 한다"면서 옹호했고, 급기야 지난 3월 31일 일본 정부는 교육칙어를 "헌법이나 교육기본법에 반하지 않는 형태에서 교재로 이용하는 것까지는 부정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에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시하는 교육칙어의 부활은 침략전쟁 당시의 가치관을 지향하는 아베 내각 교육관이라면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90년 개인의 지식 습득보다는 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메이지 천황이 '교육에 관한 칙어'를 발포했다. 이후 도덕교육의 규범이 되었는데, 1930년대 전쟁이 격화되고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자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암송은 물론이고 사본을 안치한 건물 앞에서는 경례를 했다. 교육칙어는 이렇게 군국주의 교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는 교육칙어의 낭독을 금했고, 1948년 중의원과 참의원이 교육칙어 배제 및 실효를 결의했다. 주권이 천황에게 있고, 신화적 국가관에 기초한 것이므로 기본인권을 해친다는 이유다. 그리고 군사교육이나 군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원래 '칙어'란 '임금이 몸소 가르친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교육칙어는 국무와 관련된 법령 문서가 아니라 '천황의 말'이다. 천황은 자신을 '짐'이라고 칭하고 국민을 '신민'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문제다. 315자에 불과한 전문이지만 '천황의 말'인지라 처음부터 애매하게 기록되었고,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하니 그 주석서가 300권이 넘는다. 공식 해석이라는 것이 몇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더듬더듬 읽어나가면 '짐이 생각하건대, 나의 조상이 이 나라를 건국한 것은 오래전의 일로 그 덕은 깊고 두터운 것이다'로 시작해서, 칙어의 핵심으로 보기도 하는 '12가지 덕목'을 나열한다. 효행, 우애, 부부 화합, 붕우유신, 겸손, 박애, 수학, 재능 신장, 인격 향상, 공익, 준법,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만일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정의와 용기를 가지고 봉사한다. 이렇게 해서 영원히 이어지는 황실의 운명을 돕는 것은 충성스러운 짐의 신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봉사한다'를 1930, 40년대에는 '목숨을 바치다' '나라를 위해서 죽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등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것이 동서고금 영원한 진리이니 잘 지키자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사실 교육칙어의 재평가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교육칙어 12덕목의 보편성 발언을 비롯해서 이것을 옹호하고자 하는 발언은 끊이지 않았다. 칙어는 칙령이 아니니 법령으로서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내용이 도덕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주장하는 정치가, 교육자들은 언제나 존재했었다.

좋다. 어쨌든 좋다. 단 시대를 거쳐 왜곡된 애국의 옷으로 무장된 이것을 아이들의 작은 입을 통해서는 듣고 싶지 않다. 이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과 어울려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무지한 어른들의 세상을 부수고 나갈 희망이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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