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선이 만난 사람] 정재환 방송인·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입력 2017-04-07 04:55:02

"영어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구조 반대, 모국어 체계 잡힌 10세 이후 배워야"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사진 이무성 객원기자

"짜장면 한 그릇 주세요." 누구라도 중국집에 가면 가장 자신 있게 던졌던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발음에 좀 신경을 쓰며 "자장면"이라고 말하게 됐다.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가 18년 전 처음으로 출간했던 책 제목이 바로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이다. 미남 개그맨으로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동했던 정재환은 느닷없이 한국어 발음에 관한 책을 펴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삶은 훨씬 다양하게 전개됐다. 성균관대학에 입학해 3년 만에 수석 졸업생이 되더니 한국현대사 박사와 작가의 길도 함께 걸었다. 그는 여전한 방송인이지만 그에게 독특한 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마포에 위치한 한글문화연대 강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수도 없이 들은 질문이었을 텐데, 연예인이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면서 박사학위까지 받을 정도로 공부한 이유가 참 궁금하다.

▶사람이 살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 하나는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나이 30대 중반에 '논어'를 읽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20대에 '논어'를 읽을 때와는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공자가 "죽을 때까지 학생으로 살겠노라"고 했다.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본인도 계속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나도 죽는 날까지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이 무엇인가.

▶학부 때부터 박사까지 사학이었다. 한국사 중에서도 한국현대사를 전공했다. 나는 말에 관심이 많았다. 국어사, 한글운동사를 가지고 논문을 썼다.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 관련 연구에 집중했다. 조선어학회가 해방 정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많이 했다. 당시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말을 회복하는 일과 한글전용 시대를 여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글학자들은 한글이야말로 사람이 문자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문자의 주인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글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글전용 운동을 시작했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글전용법을 만들었다. 언어생활의 개혁인 셈이다. 사실, 석사 논문을 2년 6개월 동안 썼더니 석사학위를 4년 만에 받았다. 박사 과정을 마치는 데는 6년이 걸렸다.

-아나운서도 아니고 개그맨이었는데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방송을 하면서 말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최소한 밥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시청자들이 오해 없도록 언어를 바르게 구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국어와 방송 언어 관련 책을 보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책도 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침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초청돼 나가면서 내 이미지가 조금씩 달라졌다. 당시 친구인 개그맨 이경규 씨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에게 "너는 왜 스스로 네 발목을 잡는가. 개그맨이 왜 그런 거 하느냐"라고 조언도 했다.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는 어떻게 맡게 된 건가.

▶첫 책이었던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을 보고 한림대 정치학과 김영명 교수님이 전화를 했다. "나랑 생각이 비슷하니 만나서 단체를 만들자"고 했다. 한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글과 한국어를 지키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2000년에 한글문화연대를 조직했다. 정치학을 공부한 교수가 국어학자도 아닌 내가 쓴 책을 보고 인연이 닿은 것은 우연이다.

-한글문화연대가 주로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한국어를 지키고 한글을 잘 가꿔나가는 운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글날을 국경일과 공휴일로 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글날은 원래 해방 이후 공휴일이었는데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한글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한 시기다. 그러다 한글단체들이 힘을 모아 2006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켰지만 공휴일은 아니었다. 결국 또, 운동을 통해 2013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이자 공휴일로 부활시키는데 공헌했다. 지난해에는 어문교육위원회가 국어기본법에 한국어 표기를 한글로만 한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셈이었는데, 한글문화연대에서는 그것 역시 막았다. 문화부가 소송을 당하는 구조였고, 우리 단체가 변론에 참여해서 결국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 논쟁도 있었다. 상임대표와 운영위원들이 나가서 싸워고 또 막았다. 교육부에서는 일단 유보한다고 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논쟁적일 수 있겠다. 한글은 사교육 시장이 없다. 기껏해야 유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학습지 정도다. 그러나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사교육시장이 있다. 한자를 배우려면 학원도 다녀야 하고 돈이 드는 사교육시장이 형성된다.

-한글문화연대가 이번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어떻게 된 건가. 그래서 불이익을 받았나.

▶블랙리스트는 별거 아니다. 짐작컨대, 이명박정부 당시 소고기 광우병 파동 때 우리가 촛불문화제에 많이 참여했고 그래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불이익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한글문화연대가 시민단체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단법인이고 문화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러다 보면 정부의 예산을 받기 위해 기획서를 제출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블랙리스트 때문에 기획서 채택이 안 됐다거나 예산이 삭감돼서 내려왔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한글문화연대 이름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항의서는 보냈고 자세한 내용을 파악해 연락을 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국제화시대인 점을 고려하면 이제 외국어 교육도 중요하지 않을까.

▶외국어 학습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어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구조는 반대다. 개인의 관심사나 적성에 상관없이 영어는 무조건 하고 필요에 따라 중국어나 일본어까지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벅차고, 사는 게 힘들어진다. 영어가 굳이 필요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격이다. 어느 날 우리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어떤 학생이 친구와 얘기하면서 "나는 영어 때문에 미치겠다"고 한탄을 하더라. 영어를 모두에게 강요하지 말고 영어가 필요한 사람이 충분히 배울 수 있게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어 조기교육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외국어는 모국어 체계가 잡힌 다음 10세 이후에 가르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한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조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외국어 표현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한글보다는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덜 어색할 때도 많다.

▶한국어의 기능을 키워야 한다. 요즘 영어를 많이 쓰는 정보통신, 미디어, 패션 등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대체할 한국말이 잘 안 떠오른다. 영어로 써야 개념이 정확하게 전달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무조건 한글로 바꿔야 한다기보다 한국어를 키우는 것이 한글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 사람들이 영어와 유럽어를 많이 번역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화' '개인' '자유' '문명' 등의 단어는 일본 사람들이 서양의 개념을 번역한 것이다. 근대기 일본인들이 번역을 안 했다면 지금 우리는 문화를 '컬처'라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이런 작업을 통해 유럽의 문명, 과학 등을 파악하고 그것을 수용하기도 했다. 공부의 바탕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근대화가 가능했다. 예전에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올라야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우리가 문명국가로 자신 있게 내놓을 한글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글로 과연 얼마나 많이 표현할 수 있느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도저히 한국어로는 쓸 수 없어서 영어를 써야 한다면 기능면에서 영어에게 지는 것이다.

-언어는 사회 변화에 따라 숙명적으로 변한다. 대중의 언어문화 변화에 맞춰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타협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얘기를 꼭 하고 싶다. '한국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노마 히데키라는 일본인 한국어 학자가 있다. 그는 한글을 기적 문자라고 했다. 15세기에 이렇게 과학적인 문자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했다. 그런데 그는 한글 발음의 변화에 주목했다. 최근 한국 사람들이 발음 '에'와 '애'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급기야, 이미 '에' 발음은 없어진 것처럼 언급했다. 나는 노마 히데키의 주장에 저항하고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두 발음을 잘 구분 못 하지만 여전히 구분하는 사람도 많다. '네'가 발음이 안 돼서 '니'를 허용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글의 풍부한 발음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언어 환경에 타협할 수도 있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최근 들어 국립국어원이 타협을 너무 많이 한다.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장면'과 '짜장면'을 동시에 허용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주꾸미'라고 안 하고 '쭈꾸미'라고 한다. 왜 타협을 안 하나. '아구찜'과 표준어 '아귀찜' 중 어떤 표현을 더 많이 쓰는가. 그렇다면 '아구찜'도 허용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뿐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끝에 '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저녁 드셨나여?'식 표현인데, 그렇다고 '요'를 '여'로 전부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어문규범이나 규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타협하기 쉽고 명사는 더 타협하기 쉽다. 타협 여부를 가르는 명백한 기준이 없다. 타협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말하기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국 정치인의 명연설을 부럽게 바라보는 사례도 많다.

▶국어 교육의 문제다. 필리핀만 해도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발표와 토론을 많이 한다. 예전에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한 학급 정원이 60명이었다. 80명도 있었다. 토론 교육은 아예 불가능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강의 위주 교육이 여전히 이뤄진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에게 토론과 발표를 많이 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말하기가 체득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20대가 되면 자기 생각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다.

-현재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본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개그맨 활동은 지난 1995년에 그만뒀다. 그런데 지금도 나를 개그맨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내가 제법 유명했나 보다. 지금은 개그 활동은 안 하고 방송 사회자로 일한다. 사람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먹고살면 그게 업이다. 그렇게 보면 내 직업은 개그맨 출신의 방송 사회자다. 한글운동은 직업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박사학위도 받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니까 학자가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부담스럽다. 다만, 학계에 입문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책을 꽤 많이 출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일곱 번째 책이 여름에 나올 예정이고 그 이후로도 또 다른 책이 계획되어 있다. 앞으로 책을 많이 쓰고 싶다. 언어 문제, 영어, 한국 역사, 일본 역사, 한일관계사 등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100세 시대라고 하니 살아갈 날이 많다. 은퇴 뒤 삶은 봉사하면서 사는 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시민단체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추천한다.

-지금은 예전만큼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는데, 지금 행복한가.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하다. 나는 무궤도한 삶을 살았다. 어떻게 보면 안정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내가 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다. 젊을 때는 방송하면서 시청자들한테 뭔가를 전달하고 그들을 웃겼을 때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학교 가서 학생들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낀다. 한글운동을 하면서 기쁨과 보람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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