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시름할때 木은 소리없이 울었다
황경림 나무, 최동집 나무, 우배선 나무
임진왜란 때 몸 던져 싸운 의병들의 義가 서려있다
나무를 보면, '어른'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이와 지위가 아닌 책임과 존경의 뜻이다. 어려운 시기에 앞장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어른은 당대 리더에 대한 사회적인 경칭(敬稱)이다. 식목일이면 묘목 심기에 열중하는 탓에 외려 어른과 같은 나무들에 대해선 소홀해진다. 대구에는 역사 속 어른들과 인연이 깊은 나무가 적지 않다. 새로 심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 속 나무를 찾는 것은 더 좋다.
◆의로운 뜻이 서려 있다
위기는 의인을 낳았다. 주인공은 바로 의병(義兵). 임진왜란에 몸을 던졌다. 맞서 싸워야 하는 시대에 직접 전쟁터로 나섰다. 당대가 요구한 급진적인 실천이었다. 당시와 현재의 '살아 있는 연결고리'가 나무이다.
역사를 찾으려 나무 기행을 떠났다. 첫 도착지는 동구 동내동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뒤쪽 개천 변이었다. 가녀린 줄기의 튤립나무와 산수유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었고, 운동기구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느티나무 하나가 있었다. 옆으로 뻗은 줄기를 철제 기둥이 지팡이처럼 부축했다. 듬성듬성 껍질이 벗겨지고, 짙푸른 이끼가 들러붙어 있었다.
안내판에 '황경림 나무'라는 설명이 있었다. 수령이 400년이 넘고, 높이가 10m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황경림(1561~1625) 선생이 심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희 정승의 6대손인 그는 전쟁이 나자 의병을 일으켜 초례산과 금호강 등지에서 왜군과 싸웠으며, 영천성전투와 달성전투 등지에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1598년(선조 31년) 동내동에 정착하면서 심은 나무라는 것. 황 선생은 나무 곁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일생을 마감했다.
차로 30분 거리인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도 의병과 관련한 나무가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최동집 나무'이다. 수종은 회화나무로, 수령이 약 400년이고 높이가 12m이다. 최동집(1586~1661) 선생의 아버지 최계(1567~1622) 선생은 팔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다. 공로를 인정받아 의주로 가서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1616년(광해 8년) 둘째 아들 최동집 선생이 옻골에 터를 잡으면서 집성촌이 형성됐다. 적을 물리쳐 나라를 지킴으로써 자손들이 뿌리내릴 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달서구에도 의(義)를 전하는 나무가 있다. 월곡역사공원의 '장지산 소나무숲'. 나지막한 언덕에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우아한 곡선과 푸른 잎을 자랑했다. 숲 아래 우배선(1569~1621) 장군의 동상과 박물관이 있었다. 우 장군은 전쟁이 나자 비슬산으로 피한 뒤 의병을 모집했다. 가문의 재산을 내놓아 무기와 군량미를 모으고 진을 쳤다. 당시 나이 24세였다. 의병장으로서 화원과 달성 등지에서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뒀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