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미안해요"라며 30분 내내 운 아이
서용진(가명'14) 군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버거워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기력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이다. 물을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목구멍이 헌 용진이는 하루 세 차례씩 약을 먹는 일이 가장 괴롭다고 했다. 힘겹게 약을 삼키고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 용진이를 볼 때마다 어머니 김가연(가명'40) 씨의 가슴도 미어진다.
가연 씨는 용진이가 처음 골수 검사를 끝내고 서럽게 울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용진이는 "아파서 미안해요. 잘못했어요"라며 엉엉 울었다. "아픈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달랬지만 용진이는 30분 내내 자기가 잘못했다며 울더라고요. 마음이라는 게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마음이 아팠어요."
가연 씨는 "투병생활이 길어지면서 용진이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은 연락이 뜸해졌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됐다. 그래도 용진이는 "괜찮다"고 손을 내젓는다. "차라리 용진이가 울며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좋겠어요. 축 처져 있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무너져요."
◆수술로 고비 넘겼지만 멀기만 한 완치
지난 2015년 9월, 병은 갑자기 들이닥쳤다. 용진이가 한 달 가까이 장염에 시달렸고, 목이 아파 침을 삼킬 수 없다고 했지만 백혈병이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동네의원의 권유로 종합병원을 찾은 날, 가연 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병원에 오자마자 혈액검사에 골수검사까지 진행하더군요. 하루종일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나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래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용진이는 입원해 항암화학요법을 시작했다. 매일 혈액검사를 받았고, 치료 경과를 보기 위해 골수검사까지 하고 나면 녹초가 됐다. 용진이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자주 구토를 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그래도 치료 경과가 좋다는 담당 의사의 얘기에 가족들은 힘을 냈다. 1년만 버티면 치료를 끝낼 수 있을 거라 기대도 컸다.
그러나 용진이의 상태는 오히려 나빠졌다. 골수이식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수술을 하자니 용진이가 고개를 흔들더라고요. 홀로 수술실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견딜 자신이 없다면서요. 설득하는 데 오래 걸렸죠." 수술 경과는 좋지만 용진이는 무균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설사를 하고 기력이 없어 쓰러지는 일도 잦다.
◆매일 엄마 찾는 여동생…경제사정도 어려워
가족들이 용진이에게 매달리면서 초등학교 3학년인 여동생 미진(가명)이는 외할머니 손에 자라고 있다. 미진이는 병원에서 간호 중인 가연 씨에게 매일 전화해 "언제 집에 오느냐"고 묻는다. "오빠가 아프니 조금만 견뎌줘"라는 엄마의 대답에 아이는 풀 죽은 목소리로 "알았다"며 전화를 끊는다. 가연 씨는 남편과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도 잦아졌다. "용진이가 약을 먹고 힘들어하면 용진이를 힘들게 만든 게 뭔지 얘기하다가 의견 충돌을 빚는 식이죠. 용진이에 관해서는 둘 다 무척 예민하니까요."
가연 씨는 "매달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마다 한숨이 난다"고 했다. 남편의 월급은 150만원 남짓. 병원비와 네 식구의 생활비를 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씩 쌓인 빚이 1천만원이 넘고, 수술비 3천만원도 빌려야 해요. 용진이가 다 나으면 저도 같이 일하면서 갚아야죠." 가연 씨의 소망은 용진이가 '꿈'을 갖는 것이다. 용진이는 오랜 투병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용진이가 뭐든지 체념하고 포기하는 아이가 됐어요. 얼른 나아 학교로 돌아가면 용진이가 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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