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안녕하세요, 메시지!

입력 2017-03-29 04:55:02

웅-, 웅--,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액정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편지 봉투가 입구를 펼치고 닫는 시늉을 한다. 메시지다. 벌써 수차례다. 스팸이겠지. 싹 다 지울 요량으로 메시지함을 연다.

'안뇽! 잘 있지? 나 기억해? 오후에도 즐~' 눈이 동그래진다. 스팸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장된 번호도 아니다. 누구지? 생판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뉘신지요?'라고 묻는다. '나 모르겠어? 벌써 나를 잊다니.' 지인이라면 이런 결례도 없다. 얼굴까지 붉어진다. '기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야, 나, 이거 섭섭한걸.' 몇 안 되는 글자 속에 절친인 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슬슬 화가 난다. '많이 무례하시군요. 먼저 신분을 밝히시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메시지를 쓰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속도도 빨라진다. 간단한 메시지이지만 제법 격양된 내 감정이 걸러지지 않고 그에게 모두 전달되었을 것이다.

"뭔데 그래? 액정 깨지겠다." 곁에 있던 동료가 내 행동을 의아해한다. 나는 결국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에게 보낼 메시지가 내게 잘못 전달되었다는 것. 그 역시도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결국, 서로 미안하다는 말로 웃으며 마무리를 했다.

통신이 발달하며 메시지 시대가 왔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메시지를 받는다. 광고, 안내, 금융, 대출, 청첩장, 부고, 초대에 이르기까지.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고객님'이 되거나, 생판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팀장으로부터 저금리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친절한 금융 안내까지. 나는 언제 또 이렇게 유명해져 있는 건지. 차마 끌어다 쓸 수 없는 대출, 혹할 만한 신상의 가전, 의류, 화장품 같은 광고가 유혹한다.

차단하고, 읽지도 않고 삭제하는 일이 허다하다. 감정 없는 메시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우다 보면 의도치 않은 메시지까지 쓸려나간다. 지인, 가족, 결혼, 부고가 감쪽같이 종적을 감춘 것. 사라진 것을 알았을 땐 삭제하는 나 또한 무감정의 발송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헛것의 세상이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허깨비 같은 그가 또 나를 부른다. '네~ 안녕하세요, 메시지 씨! 식사는 하셨나요? 늘 잊지 않고 메시지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에게 따끈한 답장 한 줄 보내고 싶다. 내 메시지 또한 누군가에게 헛것의 인사가 되고, 헛것의 수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잘못 전달된 메시지가 나를 발끈하게 했다. 참 오랜만에 무기력한 나를 깨운 영혼의 메시지. 무감각의 시대에 밀려드는 무감각의 메시지가 아니라, 생기발랄한 영혼의 음성이었음을. 발끈하며 주고받은 메시지 속에 그와 나의 영혼이 이다지도 싱싱하게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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