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인양작업이 24일 완료됐다. 2014년 4월 16일 침몰한 지 1천74일 만이다. 세월호는 반잠수식 선박에 실려 87㎞ 떨어진 목포신항으로 이동한다.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상처투성이였다. 선체는 부식해 온통 얼룩덜룩했다. 여기저기 긁힌 생채기와 해저에서 쌓인 부유물은 을씨년스러웠다. 선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던 'SEWOL'이라는 이름은 희미한 흔적으로 남았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는 크고 깊다. 172명의 생존자에겐 크고 깊은 트라우마를, 숨진 295명의 유가족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회한을 안겼다. 무엇보다 세월호엔 아직도 9구의 시신 미수습자가 있다. 이들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 인양 작업이 벌어지자 오열했다. 사고 해역서 1.6㎞ 떨어진 현장을 찾아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졸이며 여러 밤을 지새웠다. 차디찬 바다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시신 수습조차 못 한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다. 이들보다 더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이가 어디 있을까. 세월호 인양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던진다.
세월호는 건졌지만 갈 길은 멀다. 우선 찾지 못한 9구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먼저다. 끝까지 마무리를 잘해 '9명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시신 미수습 가족의 염원을 실현해야 한다. 그동안 제기됐던 온갖 의혹도 해소해야 한다. 바닷속 세월호를 검사할 수 없는 탓에 '잠수함 충돌설' 같은 주장이 난무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제기한 제주 해군기지용 철근 과적이 침몰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검증해야 한다. 때맞춰 21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갔다. 투명한 조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래도 정치권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정치권이 개입하면 시비는 커지고 국론은 쪼개진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에도 각 당이나 대선 후보들은 각자의 주판알을 튕겼다. 한 유력 야당 후보는 "차기 정권은 제2기 특조위를 구성해 세월호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했다. 팽목항을 찾아 숨진 학생들을 향해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남겼던 이다. 범보수 후보들이 내놓은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런 공방 자체가 세월호로 희생된 꽃다운 청춘을 위로하려는 국민들 눈엔 정쟁으로 비친다. 이제 세월호 뒷수습은 선조위에 맡겨 두고 정치인은 침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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