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인 이상, 멀쩡한 '조선 건축가' 였다…『경성의 건축가들』

입력 2017-03-25 04:55:02

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 지음/루아크 펴냄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

1932년 시인 이상(李箱)이 김해경이란 본명 대신 필명을 사용해 처음 발표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의 일부다. 암호 같은 단어 배열과 형식 파괴, 난해한 작품으로도 모자라 요절까지. 박제된 천재로 불리는 그가 시인보다 건축가로 더 오래 활동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랑스어로 된 이 시의 부제는 'AU MAGASIN DE NOUVEAUTES'다. 해석하면 '새로운(것을 파는) 상점에서'가 된다. 그가 말한 상점이 백화점이라는 데엔 이견이 거의 없다. 1930년 완공한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을 보고 쓴 것인지, 도쿄점을 보고 쓴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래서 층계와 층계를 오르내리는 사람을 묘사했다는 말도 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느낀 감성을 형상화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와 1933년까지 총독부에서 건축기수로 일했고, 그의 작품이 1년간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표지 디자인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후자의 해석에 무게를 둘 수 있다. 그런 그가 건축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대표되는 근대건축물은 한국전쟁과 부동산 개발, 식민 잔재 청산 논리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조선총독부, 화신백화점, 국도극장 등 당대의 정치권력과 사회 문화상을 품은 많은 건축물은 그 건축 의도가 어떻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런 근대건축물의 보존과 재발견이 도시재생의 화두가 됐다. 덕수궁 현대미술관, 명동예술극장, 경교장 등 고층 건물 사이에서 색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이들 건물의 역할과 외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을 설계하거나 시공했던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다.

'경성의 건축가들'은 식민지 시대의 건축가들에 관한 이야기다. 건축가 김소연은 이 책에서 경성공업전문학교(경성고등공업학교) 출신이거나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했지만, 당시 주류를 형성한 일본인 건축가에 밀렸던 조선인 건축가 9명과 외국인 비주류 건축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과 자취를 조명한다. 각각의 사연에 이어 책 뒷부분에선 도시형 한옥의 건설과 개발, 좌'우익 이념의 갈등도 다룬다.

조선인 최초로 서구식 건축교육을 받고, 총독부 건축기사가 됐고, 종로에서 건축사무소를 열어 '최초'와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박길룡. 저자는 1937년 준공한 화신백화점(현재는 철거)의 설계자 박길룡과 그가 쌓은 명성으로 품어냈던 조선 건축가들을 차례로 풀어나간다.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르고서 뒤늦게 일을 시작했지만, 보성전문학교 본관(현재의 고려대학교 본관) 등 학교 건물을 남긴 박동진, 역시 항일운동 이후 미국인 윌리엄 보리스가 일본에 차린 보리스 건축사무소의 핵심 멤버가 돼 태화사회관을 만들고 이화여대 본관, 중강당 등을 남긴 강윤, 반일운동으로 일본에 쫓기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와 시카고, 미네소타 정규 건축교육을 경험했지만 정작 조선건축계에 뿌리내리지 못한 박인준, 미쓰코시백화점(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화신백화점, 경성제국대학 본관(현재 예술인의 집), 조지아백화점(현재 서울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등의 구조계산을 하고 경교장을 설계한 김세연, 멀쩡한 건축가였다가 문학계 이단아가 된 이상, 우리말 건축 용어 정리에 앞장선 장기인, 후배 건축가의 활동을 지원한 김윤기와 국회의사당'장충체육관'서울대 중앙도서관 등을 내놓은 '종합건축연구소'의 설립자 이천승.

책에 나오는 조선인 건축가들은 대부분 비록 일제가 세운 학교에서 일본의 서구 모방 건축을 배웠지만, 자신만의 색깔로 설계하려고 했던 이들이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토목과를 나온 조선인이 취직한 곳은 대부분 총독부나 경성부청 같은 관청이었다. 일제의 지배와 수탈을 위해 건물을 지었지만, 건축가는 친일 논란에서 비켜갔다. 건축가는 '집 짓는 기술자'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가치중립성' 때문에 식민지라는 암울한 현실에도 모더니즘 건축, 개량주택 등 자유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식민지 조선에 정착했지만, 본국에서는 주변인의 삶을 살았던 나카무라 요시헤이, 다마타 기쓰지, 오스미 야지로와 건축으로 선교하며 1910년부터 1940년까지 대구계성학교 본관(현재의 핸더슨관)과 안동교회 등 145건의 조선 건축물을 남긴 미국인 건축가 윌리엄 보리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친일과 저항의 회색지대에 있었지만, 시대정신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던 이들, '짝퉁의 짝퉁'을 만들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내려고 했던 'B급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개발에 대한 관점과 건물의 보존 방식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회색지대에 있던 그들의 자취가 희미하게라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건축이라는 이상 앞에 가로막힌 암울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모순된 자각이 있었던 덕분이다. 저자는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수완, 현대 건축'도시계획사에 남긴 족적에도 불구하고 이천승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놓으며 마무리한다.

"시대상은 보여도 시대의식이 보이지 않는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빼앗긴 수도의 'B급 건축가'들이 설계한 꿈은 '희망'이었을까, '야망'이었을까.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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