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이긴 세력이 그 추종자를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를 '엽관제'(獵官制, spoils system)라고 한다. 1832년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 윌리엄 마시가 당시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정실 인사를 "전리품은 승리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라고 옹호하면서 굳어진 명칭이다. 공식 명칭은 '교체임용주의'(doctrine of rotation)이다.
이 제도가 출현한 것은 시민혁명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지면서부터이며 가장 성행한 곳은 19세기 미국이다. 1829년 잭슨 대통령이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후 50년간 미국은 엽관제의 천국이었다. 얼마나 성행했느냐 하면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존경받는 링컨도 당선 즉시 전국의 우체국장과 군 지휘관을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등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의 85%를 경질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우체국장이 교체의 최우선순위에 올랐던 것은 당시 우체국은 정보 유통의 주요 통로였기 때문이다.
잭슨이 엽관제를 도입한 취지는 좋았다. 당시 연방 관직은 동부 상류 계층이 독식하고 있었다. 자신처럼 서부 개척민 출신은 꿈도 못 꿨다. 엽관제는 이런 불공정 구조를 깨는 수단이었다. 잭슨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엽관제를 "민주주의의 실천적 정치원리"라고 선언하고 인사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나빴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선거 바람을 타고 공직에 임명되면서 비효율과 무능,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883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공무원인사관리위원회 설치, 임용시험에 의한 공개 채용, 정당에 대한 공무원의 자금 제공 금지 및 선거운동 금지를 명문화한 '펜들턴 연방공무원법'이 만들어지면서 엽관제는 퇴출되고 실적제(merit system)가 들어섰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공무원의 정당 가입 등 정치 참여 허용을 약속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무원의 정치 참여 금지는 이미 2004년과 2014년에 헌법재판소가 합헌으로 판결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대선 주자들의 약속대로라면 신분보장제인 우리나라 공무원 임용제도는 '사실상의 엽관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공무원의 정치 참여가 허용된다면 정치권에 대한 공무원의 줄서기는 하위직까지 번질 것이고, 정치권의 '내사람 챙기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미국이 이미 폐기한 제도를 왜 다시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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