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대각선으로 가르는 커다란 댓잎…농묵의 빠른 필치로 강한 기세와 활력
커다란 댓잎이 무성하게 덩어리져 바람에 쏠리며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르고 있다.
농묵의 빠른 필치가 중첩되며 강한 기세와 활력을 보여준다. 부드럽고 풍성한 긴 붓털의 양호(羊毫) 붓에 빡빡하게 갈아놓은 검은 먹을 적셔 벼루에 척척 가다듬으며 호쾌하게 붓을 휘두르는 서병오의 모습이 이 그림에서 떠오른다.
서병오로 하여금 이토록 기세등등하고 흔쾌한 기분의 작품을 남기게 한 인물은 진주의 애호가 유남(唯南) 박재표(1886~1951)이다.
한시를 잘 지어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서병오는 64세 때인 1925년 진주에서 열렸던 한시 백일장에 심사위원으로 초빙되어 갔다. 서병오의 진주 방문 소식을 들은 박재표는 서병오를 초청해 휘호회를 주선했다.
휘호회는 작가와 수요자가 함께 소통하며 어울리는 가운데 작품의 주문과 제작, 감상과 구매가 동시에 이루어진 근대기의 독특한 문화이다.
다수의 대중이 미술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서구적 미술 문화가 수입되면서 전시장이 생기기 이전 지역 유지의 사랑이나 요릿집, 여관 등에서 열렸던 즉석 개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예, 사군자화가 즉석에서 완성할 수 있는 미술이었기에 가능했다.
이때 동행했던 제자 죽농(竹) 서동균(1903~1978)은 서병오의 휘호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인근의 마산, 하동, 의령 등지에서 애호가들이 매일 수십 명씩 모여들어 보름 동안이나 계속된 성대한 자리였다고 회고하였다.
서병오는 이들과 함께 시주(詩酒)와 문묵(文墨)으로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념으로 박재표에게 이 '죽석도'를 그려주며 자작시를 지어 화제로 써 넣었다. 시는 '유남'(唯南)으로 시작하는데 박재표의 호인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이어지는 '고취'(高趣)와 함께 '남쪽 지방에서 고상한 취향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라는 칭송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중적 시어이다.
唯南高趣過凡倫(유남고취과범륜) 賣土購書不怨貧(매토구서불원빈) 爲贈慇懃無別物(위증은근무별물) 剪燈隨意寫風筠(전등수의사풍균)
"유남의 고상한 취미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어, 전답을 팔아 서화를 수집하며 재산이 줄어도 원망하지 않네. 은근한 뜻 전하려 해도 별다른 물건 없어, 촛불 심지 자르며 뜻 가는 대로 풍죽을 그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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