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홍상수-김민희 "사랑하는 사이"

입력 2017-03-17 04:55:01

사생활은 '애정' 정서상은 '불륜', 두가지 시선

홍상수 감독(왼쪽)과 배우 김민희가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홍상수 감독(왼쪽)과 배우 김민희가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언론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지난해 6월 불륜설에 휩싸인 후 한국에서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7.3.13/연합뉴스
영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한 장면.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일'들이 참 자주 목격되는 요즘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이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극우의 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시국이 뒤숭숭한 와중에 '불륜설'에 휩싸였던 영화감독 홍상수(57)와 배우 김민희(35)까지 공식석상에서 "사랑하는 사이"라며 관계를 인정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정이 있는 중년 남성과 젊은 여배우가 소위 '한국적 정서'를 무시하고 공개적으로 서로 사랑을 어필한 케이스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조기 대선 등 정치 현안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자칫 홍상수와 김민희 두 사람이 집중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개인의 견해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한국적 정서에 반하는 행동인 건 사실이다. 그 한국적 정서의 특성상 앞으로 선입견과 질타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이 분명한데도 이런 과감한 결정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홍상수-김민희, 공개석상에서 관계 인정

지난 13일,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설'로 들려오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당시 홍 감독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다. 저희 나름대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다.

이어 홍 감독은 "그동안 언론 보도에 침묵한 건 개인적인 일이라 굳이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아는 듯 당연하게 우리 이야기를 하기에 또 한 번 '직접 말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자리에 서는 데에도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언론과 자연스레 만나고 있는데 한국에서 안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새 영화를 만들었으니 기자들과 만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나왔다"고 공식석상에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개인적인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며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개인사와 영화 작업과의 사이에 선을 긋기도 했다.

김민희 역시 "저희는 만남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또 진심으로 만나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 저희에게 다가올 상황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라고 홍 감독과 마찬가지로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이제 영화를 통해서만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영화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 많았는데, 좋은 평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기분이 좋았다"며 홍 감독과의 영화 작업으로 얻게 된 성취감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두 사람은 각각 오른손 약지에 커플링을 끼고 있었으며, 이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도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외국에 동행했을 때처럼 편안하게 서로 챙기며 스킨십을 가지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듯했다.

◆홍상수, "동의 구하지 못하더라도 존중받고 싶다" 밝혀

홍 감독은 배우 김민희와 본인의 관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관련 보도뿐 아니라 실시간 검색어 등 여러모로 관련 내용을 많이 찾아봤다. 그런데 일반 국민이라기보다 '어떤 분'들이 우리 연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언론 보도 이후 생활에 불편을 겪기도 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어떤 처지나 개인적인 정서나 그런 것들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소수의견'을 가지고 모두 다 우리를 비난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 주변, 혹은 김민희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비난보다 그 반대의 반응"이라고 김민희와의 관계를 응원해주는 이들도 많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또한, "내가 우리를 둘러싼 '비난'에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내게 피해를 준다거나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게 아니라면 혹은 내가 싫더라도 그 의견까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나 역시 남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싶다"고 비난 여론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이처럼 홍상수-김민희 두 사람의 입장은 명확했다. 대중의 빗발치는 비난을 두고 '소수의견'이라 칭했으며, 오히려 그들 주변의 시선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비난을 감수하고 그 의견까지 받아들일 테니 '우리 선택과 삶'도 존중해 달라"는 일종의 부탁을 하기도 했다.

◆작가와 뮤즈, 이상적 관계로 발전할까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두 사람의 관계는 엄연한 불륜이다. 아직도 홍 감독은 유부남이며, 이혼조정이 진행 중인 상태다. 이 정도면 꽤 자유분방하다는 할리우드에서도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홍상수-김민희 두 사람의 관계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고 하니 '국내 정서도 많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홍 감독과 김민희가 말하는 '긍정적인 시선'에는 '박수'가 아니라 '애달픈 시선'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러한데 그럼에도 용기있는 선택을 했으니 부디 행복하게 꽃길만 걸으라'는 의미가 담긴, 대놓고 박수를 쳐줄 순 없지만, 홍 감독이 바라던 대로 '그 선택을 존중해주는' 뜻에서 보내주는 응원일 것 같다.

사실 응원을 해주기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도 애매하다. 홍 감독 말대로 '존중'해주는 정도가 최선인 듯한데, 생각을 바꿔서 '영화'라는 두 사람이 가진 공통분모 안에서 생각해보면 좀 더 편안하게 그들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하다.

홍 감독은 상업영화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작가주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인물이다. 오랜 시간 작품활동을 하면서 제도권에 속한 소위 지도층과 지식층의 위선적인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인간이 가진 본능을 전면에 부각시켜 관객들에게 깨달음을 안겨줬다. 기존 상업영화의 내러티브 체제를 파괴하고, 지극히 일상적으로 보이는 자신만의 톤 안에서 새롭게 이야기 흐름과 인물 및 대사를 구성하며 기존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실험적 시도를 했다. 프랑스 예술영화의 톤과 흡사한 부분이 많아 '한계'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꾸준히 이어진 작품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다만, 홍 감독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예를 누리면서도 칸-베를린-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 본선 무대에서 본상을 받는 등 '확실한 한 방'을 날리진 못했다. 그런데 그 '한 방'이 아이러니하게도 김민희와 함께하면서 완성됐다. 홍 감독은 최근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자신의 뮤즈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에 해당하는 은곰상을 안겨줬다. 본인의 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받은 것도 사실 처음이다. 김민희는 김민희 나름대로 배우로서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예술적 성취감을 맛봤고, 홍 감독 역시 그가 소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주변에서 아쉽다고 했던 그 '한 방'을 제대로 날릴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한 그 커플은 '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용감하고 돋보였다.

어찌 보면, 피카소가 6명의 연인과 만나고 헤어진 뒤, 80세의 나이에 자클린 로크와 재혼하며 또 한 번 새로운 영감을 얻은 것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정답이 없는 이야기인 데다 자칫 오해의 소지만 남길 수 있으니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이만, 황급히 글을 마무리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