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인간 세상에도 두 임금이 없다. 춘추전국이 통일된 것은 천지의 법칙이고 고금에 변치 않는 대의이다. 큰 명나라는 천하의 종주국이므로 해 돋는 동방에 있는 우리나라가 어찌 감히 신복(臣服)치 않겠는가?"
"단군이 조선의 임금이라고 하나 문헌상 근거가 없다. 삼가 생각하면 기자(箕子)께서 조선에 오시어 우리 오랑캐를 천하게 보지 아니하시고 후히 기르시고 부지런히 가르치셔서…기자의 망극한 은혜를 집집마다 외우고 사람마다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부끄럽게도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다. 전자는 이황이 일본의 한 장군에게 보낸 편지에, 후자는 율곡 이이의 '기자실기'(箕子實記)에 나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은 조선 지식인 계층이 머리털부터 뼛속까지 모화(慕華)의 포로였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실학자도 다르지 않았음은 이런 주장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박제가는 당시 조선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을 배우자고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너무 '오버'했다. 모든 것을 중국을 따라 해야 한다면서 말까지 중국어를 쓰자고 했다. 연암 박지원도 그랬다. 아들에게 총각(總角), 즉 한족(漢族)의 쌍 상투를 틀게 했다.
모화주의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오늘날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이황, 이이, 박제가, 박지원의 중국이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의 중화주의 찬양은 이를 잘 보여준다. "중화주의는 천하의 중심인 중화는 주변 작은 나라를 보살피고, 주변은 중심인 중화가 정한 천하 질서에 순응하고, 도전치 않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지낸다는 '자발적 동의' '내정 불개입' '평화지향' 질서 체계였다."
그 결론은 자못 장밋빛이다. "구조적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지배주의 또는 패권주의보다는 설복(說伏)과 동의 유발 중심의 지도주의로 나아갈 경향성을 띠고 있다."('통일뉴스' 2015년 9월 19일) 중국 스스로도 중화 패권주의를 이보다 더 잘 포장할 수는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드 배치에 치졸한 보복으로 나오는 중국에 대해 "걱정하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참으로 넒은 국량(局量)이다. 조선 지식 계층의 모화도 중국에 대해서는 모두 '이해'하는 넓은 국량이 그 밑바탕이었다. 문 전 대표의 국량에서 격세유전하는 모화 DNA의 발현을 본다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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