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올랭피아의 기억

입력 2017-03-09 04:55:01

"세상에! 저런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다니…."

1865년 파리 시민들은 살롱전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였는데, 옷을 벗은 창녀가 비스듬히 누워 있고 그 뒤에는 흑인 하녀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 속의 모델은 관객을 쏘아보면서 마치 "나는 창녀인데, 그럼 너는?"이라고 도발적으로 묻는 듯했다.

당시에도 여성 누드가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신화와 매혹적인 이야기의 여주인공 같은 '환상 속의 여인'만 그려졌다. '성처녀로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속의 누드는 비인격화되어야 하며, 특정 인물을 생각나게 해서는 안 된다.' 19세기의 미적 개념으로 볼 때 비너스나 요정도 아니고, 창녀가 모델로 등장했으니 경천동지할 사건일 수밖에 없다. 전통과 관습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미술사에서 이만큼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은 작품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주말이면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 불가능할 지경이었다는 점이다. 관람객의 분노로 그림이 훼손될까 봐 경찰관 2명이 지킬 정도였다. 세상의 비웃음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흥행 측면에서는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마네는 평생 좌절감과 실의에 빠져 허덕댔다. 1883년 마네가 죽을 때까지 '올랭피아'는 '역겨운' 그림일 뿐이었고, 1890년에 들어서야 모네 등 동료 화가들의 도움으로 격이 낮은 뤽상부르 미술관의 귀퉁이를 겨우 차지했다. 1907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1986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는 '세계 최고의 그림'이 돼 있었다.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구영 씨의 '더러운 잠'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희화화하려는 목적이었는데, 그 결과는 '표현의 자유' '성 상품화' '좌파의 책동' '사생활 보호' 등 온갖 파생적인 논쟁으로 확대됐다. 며칠 전에는 표창원 의원의 부인을 덧씌운 현수막이 걸리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더러운 잠'은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시사적인 패러디물일 뿐이어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대상이 되는지 의아스럽다. 한국에서 정치는 무엇이든 잡아먹는 블랙홀이나 다름없기에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와는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치 현실 못지않게 씁쓸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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