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선공원 걷기

입력 2017-03-02 04:55:01

철로 걷은 자리에 사람사는 이야기가 쭉~ 펼쳐집니다

현재 아양기찻길의 화려한 야경
현재 아양기찻길의 화려한 야경

소음으로 주민들 괴롭히던 열차길은 공원이 됐고 새싹처럼 돋은 골목엔 아이들 웃음소리가 커졌다

◆동쪽으로 걷다

동쪽으로 걸었다. 동대구역 부근에서 첫 발걸음을 뗐다. 철길이 있던 곳에 기다란 모양의 공원이 들어섰다. 의자와 운동기구가 0.5~1㎞ 간격으로 놓였다. 소음으로 주민을 괴롭히던 열차길이 아양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동대구역에서 K2(대구 공군지기) 입구까지 1.7㎞ 구간은 2011년 12월부터 2014년 9월까지 공사가 진행됐다. 공원 면적은 2만2천㎡로 도심의 경상감영공원(1만6천500㎡)보다 넓다.

지난달 20일 오전, 전날 내린 비로 땅은 촉촉했다. 해가 떠오르면서 물기가 증발됐다. 코로 상쾌한 찬 공기가 들어왔다. 바싹 마른 대왕참나무 잎이 바람에 날렸다. 닭발 모양의 황금빛 잎이 흔들리면서 파도가 모래사장을 쓰다듬는 소리를 냈다. 일렬로 선 나무의 호위를 받으면서 노인들이 운동을 나왔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도 뒤뚱대며 공원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노인들이 "아이고 귀엽네"라며 햇솜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동구청을 지나 380여m를 이동했다. 아양기찻길이 나왔다. 철교를 보행교로 리모델링한 곳으로 다리 중앙의 실내공간에는 카페 2곳, 소규모 갤러리와 박물관이 있었다. 김상용 작가의 '오로라 스케치' 그림이 걸렸다. 흰머리 지긋한 70대 노인이 가던 길을 멈췄다. 입을 벌린 표정으로 오로라의 황홀한 색감을 감상했다. 실외공간에선 한 손에 장을 본 비닐봉지를 쥐고 서 있는 중년 남성을 만났다. 나머지 손에 커피를 들고 강을 깊게 응시했다.

1988년부터 지저동에서 살아온 류춘희(58) 씨는 "철길을 걷어내고 나무를 심어 공기가 좋아졌다. 쉼터가 있어서 이웃끼리 소통할 수 있고 쓰레기가 쌓이던 동네가 쾌적해졌다"며 공원을 두 손 들어 반겼다.

금호강을 건넜다. 멀리 팔공산이 보였다. 봉우리가 새파란 하늘로 솟았다. 순간, 귀를 찌르는 굉음이 하늘에 퍼졌다. 전투기가 가파른 예각으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며 방향을 틀었다. 전투기는 멀어져갔다. 소음은 길게 이어졌다.

 

◆K2 주변 동네 속으로

옛 대구선 부지는 K2와 평행하다. 지저동과 동촌동, 검사동, 방촌동을 차례로 지난다. K2 입구의 입석네거리에서 율하천까지는 '동촌공원'으로 꾸몄다. 4.3㎞ 길이에 7만6천㎡가 쉼터로 거듭났다. 국채보상기념공원(4만3천㎡)의 1.7배다.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예전 주변 상가는 낮았고, 주택은 낡았고, 주민은 늙었다. 공원을 조성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언 땅이 녹고 새싹이 돋듯 높은 새 건물이 들어섰다.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늘었다.

동촌동의 옹기종기행복마을에 다다랐다. 낡은 주택가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었다. 걷다 방향을 바꾸면, 벽에 그려진 만화 캐릭터가 불쑥 튀어나왔다. 곳곳마다 다른 그림과 풍경이 발길을 오래 붙잡았다. 여대생 3명이 팔짝 뛰면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며 까르르 웃었다. 다가가니 손으로 입을 막지만, 웃음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포켓몬 사냥에 나선 아이 2명이 연방 골목을 서성였다. 작은 하천을 건너니 옛 동촌역사(근대문화유산 제303호)가 나왔다. 작은 도서관으로 재단장을 했다. 동네 꼬마들이 '쥐가 곳간 드나들 듯' 역사를 오갔다. 아담한 실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책을 보는 데 열중했다. 작은 공원으로 조성된 앞마당에는 철길이 있고, 가로등도 열차 신호등 모양이었다. 어른 가슴 높이의 관목 속으로 들어가 숨바꼭질하는 남자아이의 볼이 빨갰다.

◆농촌과 도시의 공존

대구도시철도 1호선 방촌역 부근을 지나자 풍경은 농촌으로 변했다. K2 동쪽에 약 80만㎡에 달하는 넓은 밭이 펼쳐졌다. 농부들이 굴착기를 이용해 연근을 캤다. 검은 진흙 속에서 어른 팔보다 굵은 연근을 수확했다. 연근은 땅속에 촘촘히 박혀 있어서, 30여㎡ 정도만 캐도 허리 높이 이상 쌓일 정도였다.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니 또 다른 연근 밭인 '구름들'(14만㎡)이 나왔다. 대구선공원과 바싹 붙어 있다. 주민은 "6~8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연꽃을 감상할 수 있겠다"고 귀띔했다.

율하천을 건넜다. 안심연료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멘트공장의 회색 구조물이 높게 솟아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니 연탄공장이 나왔다. 1960, 70년대 낡은 공업단지를 연상케 했다. 외벽은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곳이 많았고, 검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저탄장에는 검은 탄 덩어리가 3~5m 높이로 쌓여 있었다. 대구시는 이곳을 안심뉴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토지 보상이 마무리되면 올해 안에 연탄공장과 시멘트공장이 이전하게 된다. 2020년이면 유통'상업, 주거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뀐다.

동쪽으로 1.3㎞. 20분을 걸었다. 율하천에서 끊긴 공원이 다시 나타났다. 대림육교까지 1.4㎞를 뻗어 있는 '반야월공원'(3만3천㎡)의 출발점이었다. 근대문화유산 제270호인 반야월역사가 웅크리고 있었다. 뒤로 높은 아파트단지가 버티고 있어 앙증맞은 느낌이 났다. 작은 도서관으로 다시 활용되고 있다. 공원은 도심 휴양지로 조성 중인 안심창조밸리 입구에서 끝이 났다.

장충석 동구청 공원녹지과장은 "대구선공원은 원이나 면이 아닌 선으로 된 공원이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덕분에 주민 접근성이 좋아 혜택을 보는 인원이 많다"며 "대왕참나무와 벚나무, 이팝나무 등 계절별로 특색이 있는 나무를 심었다. 차츰 주변 집값이 오르고 방치됐던 공터에 건물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촉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옛 대구선=1917년에 개통했다. 동대구역과 청천역 사이 14㎞를 이었다. 주택가와 맞닿아 있어 민원이 많았고, 주변 공업단지가 쇠퇴하면서 기능이 축소됐다. 1992년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대구선 이설이 확정되고, 2006~2007년 대구선공원(아양'동촌'반야월공원) 조성이 결정됐다. 2008년 열차 운행이 완전히 중단됐다. 이듬해부터 공원 공사를 시작,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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