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어내는 일은 인쇄의 꽃" 40여년 돈 속에 파묻혀 살아
누구나 한 번쯤은 '돈'에 파묻혀 봤으면 하는 꿈을 꾼다. 이런 꿈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국내 유일의 '돈 만드는 공장'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경북 경산시 화랑로)가 바로 그곳이다. 인쇄'출판 부문 대한민국 명장인 이삼로(58'부장) 씨는 그곳에서 돈 만드는(?) 일을 40년 넘게 하고 있다. 이 명장은 "돈을 찍어내는 일이야말로 인쇄의 꽃"이라고 했다.
◆정치가의 꿈이 인쇄 기술자로
전남 곡성이 고향인 이 명장은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시집간 누님 집에 얹혀살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정치가가 꿈이었던 이 명장은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다. "너무 부끄러워 집을 나와 자취를 했다. 생활이 힘들고 돈이 필요해 실업학교를 택했다"고 했다. 100일 벼락치기 공부 끝에 서울공고 인쇄과에 합격했다. "당시 경제개발이 한창이라 기술자가 많이 필요했다. 기계, 전자, 건축, 인쇄과를 지망했는데 다 떨어지고 마지막 인쇄과에 붙었다. 그것이 인쇄'출판 인생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1977년 졸업 후 대전에 있는 조폐공사에 입사했다. 이 명장의 인쇄를 향한 호기심과 열정은 배움으로 이어졌다. 실무 경험에다 대학과 대학원(석사 학위 취득)을 다니며 인쇄 이론을 더했다. 이 명장은 "한 분야에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소위 말하는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모르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진로를 개척했다"고 했다.
사내에 '품질관리 활동'이란 이름으로 분임조를 결성했다. 동료들과 작업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개선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바코드 계수 시스템을 적용시켜 바코드 번호 인쇄와 리딩을 정착화해 계수 인력을 줄이는 등 성과를 냈다. "이 시스템은 인쇄 이력서이자 실명제로 작업자들 서로가 믿고 일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또 다른 개선활동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 우표 하이라이트부의 잉크 묻음 상태를 개선한 '특수 천공 방법 적용 및 그라비어 인쇄기 헬리오펀 장치 개선'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특수한 기능성 안료를 제품에 접목시켜 개성과 창의성을 갖춘 우표를 인쇄했다. 이 기술은 '특별우표 특이우표 부문'에서 세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차이나 세계우표 전시회 우정사업본부 우표제품 전시회'에서 최근 3년 동안의 우표제품 품평회 결과 '금상'을 수상했다. "성과를 내자 분임조 활동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당연히 직급도 올라 기분이 좋았죠."
◆국가품질명장, 그리고 대한민국 명장
이 명장은 꾸준한 연구'개선 활동으로 화폐 인쇄 기술과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분임조 테마 해결 9건, 품질 및 공정개선 37건, 제안 340여 건에 이를 정도로 다수의 공정 개선 및 제안을 했다. 2007년 조폐 품질명장, 2008년에는 지식경제부로부터 품질관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국가품질명장'에 선정됐다. 그리고 2013년 국내 기술인의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 인쇄'출판 부문 명장에 선정됐다. 이 명장은 "인쇄와 출판은 섬세한 예술이다. 점 하나 선 하나, 글자의 작은 간격 차이가 세련됨과 유치함, 촌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을 결정짓는다"면서 "명장은 2010년, 2012년 연이어 떨어지고, 세 번째 도전 끝에 성공했다"며 활짝 웃었다.
◆Just Do It
이 명장은 명장이 된 후에도 각종 사내외 대회 심사, 분임조 활동 및 인쇄기술전수학교에서 현장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생각이 있으면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도전 정신 등을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이 명장은 후배들에게 'Just Do It'(지금 당장 실행하라), '과거의 습관 대신 새로운 습관을 익히자' '습관이 삶에 시스템이 되도록 하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등을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긍정적인 사고로 꿈과 도전의식을 가져라. 포기는 안 된다. 다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는 경험이다. 하면 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도전의식을 가지고 하면 성취할 가능성이 높고, 성취하면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배려할 수 있고 용기도 생긴다"고 했다. 이 명장은 요즘도 현관 거울을 보면서 '넌 할 수 있어'라며 다짐하고 출근한다고 했다.
◆돈의 탄생 과정은 예술…8단계 공정 거친 목화솜, 세계 최고 품질 지폐로 변신
지폐는 지문(바탕) 인쇄→스크린 인쇄→홀로그램 부착→요판 인쇄→검사→활판 인쇄→포장 및 검사 등의 8단계 공정을 거친다. 각 인쇄 공정 이후 그 자리에서 자연건조를 시켜야 하므로 공장 내부는 연중 동일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한다.
지폐 원료는 목화솜이다. 돈이 물속에서도 원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형광색 색섬유를 입힌다. 이삼로 명장은 "나무 원료는 불순물이 많고 수분에 취약해 지폐 재료로 적합하지 않아 목화솜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은선(숨은 실선)이 포함된 화폐 용지는 우선 특수 형광물질이 입혀지는 지문 인쇄 과정을 거친다. 앞'뒷면에 동시에 바탕 그림이 입혀진다. 스크린 인쇄는 화폐 뒷면에 금액 숫자가 찍히는 공정이다. 이 부분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데 이는 빛의 반사에 따라 굴절이 달라지는 특수잉크 때문이다. 이어 홀로그램 은박을 씌우는 과정과 지폐 앞'뒷면에 인물과 배경 그림을 넣는 요판 인쇄 공정이 이어진다. 요판 인쇄는 입체감을 고려해 뒷면, 앞면 순서로 한다.
인쇄 상태 점검 후 지폐 상단에 고유번호 11자리가 찍히는 활판 인쇄 공정이 이어진다. 활판 공정을 끝내면 전지권 절삭 및 포장'검사 공정을 거쳐 한국은행에 보내진다. 이삼로 명장은 "우리나라 지폐는 디자인이나 재질'잉크 등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더 나은 지폐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 명장은 "직원들은 '돈'을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제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돈을 사용하는 사람은 어렵게 만든 돈인 만큼 소중하게 관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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