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반도는 비록 광대한 면적은 아니지만 높은 산과 깊은 강으로 골골이 경계를 이루고 있어 지역별로 말씨도 다르고, 음식 및 생활문화에도 차이가 많다. 그 이전은 말할 것도 없지만, 15~19세기 동안에도 한반도의 생태환경과 한국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산업화 이전까지 한국인의 일상생활을 강력하게 규정했던 것은 생태환경이었다. 이 책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호랑이에서 소까지, 무너미에서 화전까지, 숲에서 냇가까지, 누룩에서 마마까지, 혹은 야생동물과 가축, 농지와 산림, 전염병 등 사람을 둘러싼 생태환경 변화를 통해 조선시대를 살펴보는 책이다.
무너미는 '하천이 범람해 하천 양쪽에 물질이 퇴적되어 형성된 평탄한 지형'을 지칭하는 것으로 서울대 지리교육과 김종욱 교수가 제안한 순우리말 학술용어다.
◇목화가 가져온 부, 목화가 가져온 질병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의 대부분을 주변 자연에서 얻어야 했던 조선인들의 생활은 한반도 생태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화전으로 산림 침해, 냇가 농경지 확대 등이 그 예다. 마찬가지로 변화된 생태환경 역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호랑이의 사람 습격, 이질의 만연 등이 그 예다.
고려말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오면서 조선의 복식문화와 한반도의 농업경관, 농업경제 시스템은 큰 변화를 겪었다. 고려 말까지 비단, 모시, 삼베,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던 사람들은 목화 덕분에 바람이 잘 통하면서 가볍고 질긴 면포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제작과 관리에 품이 덜 드는 면포 덕분에 여인들은 옷감을 짜고, 바느질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면포 수요의 증가는 목화재배 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한반도 생태환경에 연쇄적 변화를 이끌었다. 하삼도 산림지대 중 목화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급속히 밭으로 바뀌었고, 화전 개발이 촉진되었다. 이에 따라 밭으로 개간된 산림에서 살아가던 야생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게 되었고, 사람과 야생동물의 접촉 증가는 전염병을 불러오기도 했다.
◇우력(牛力)의 폭발적 증가, 야생동물 멸절
조선은 농본주의 국가였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면 농사를 돕는 소가 무척 많았을 것 같지만, 세종 무렵만 해도 전국적으로 소 숫자는 3만 마리 안팎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시 소는 덩치도 지금 소보다 작았다.
세조 때 오키나와에서 도입된 물소의 후손들과 교배하면서 우리나라 소는 이전보다 덩치는 2배쯤 커지고, 힘도 2배쯤 세졌다. 논밭을 가는 속도는 2~4배쯤 빨라졌다. 소 숫자 역시 20세기 초에는 110만 마리가량으로 조사됐다.
소 품종 개량과 숫자가 늘어나면서 15세기 기준으로 3만 우력(牛力'서양이 말의 힘을 기준으로 '마력'을 만든 것에 대한 대비 개념)이었던 노동력이 20세기 초에 이르면 220만~440만 우력으로 팽창했다.
우력이 늘어났다는 것은 노동력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농토가 넓어졌음을 의미하고, 이는 야생동물의 입지가 좁아졌음을 의미한다. 소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과 반비례해 15~19세기 범과 표범의 숫자는 크게 줄었다.
조선은 농민을 보호하고,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성종 3년(1472년)에는 '범을 잡는 사람'이라는 뜻의 착호인(捉虎人)을 뽑았는데, 전국적으로 1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호랑이 사냥 조직은 더욱 강화되어 17세기 이래 지방 병영에는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사를 두었다. 산포수라고 불리기도 했던 호랑이 사냥꾼들은 거주지 부대에 편성되어 평시에는 호랑이 사냥에 참여했고, 유사시에는 병영 군사로 동원됐다.
◇사람, 숲과 냇가를 차지하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숲의 사용권을 민간에 개방했다. 백성들은 나라에서 봉산(封山)으로 설정해 출입을 제한한 일부 지역 외의 개방된 숲에서 땔감과 각종 특산품을 얻고 새로운 경작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조선의 이 같은 산림 개방 정책은 원시적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산림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16세기 조건부로 산림천택(山林川澤) 토지의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면서 농경지에 신생 마을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원시적 산림은 점차 축소되었다.
냇가 또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시냇가 무너미 땅은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 금단의 땅이었으나, 잦은 범람으로 땅이 기름져 농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작하던 땅이었다. 여기에 15, 16세기 당시로는 신문물인 천방(川防), 방천(防川), 보(洑) 등 인공 제방이 설치되면서 냇가는 백성들에게 물고기 사냥터이자 볼거리가 있는 곳, 학문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을 닦는 수양처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야생동물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약인 동시에 병이었던 미생물
미생물은 때로는 사람을 더욱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심각한 질병을 퍼뜨려 온 마을을 파멸에 이르게 했다.
약으로 치료하기보다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조선시대에는 미생물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개발해 질병을 예방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미생물은 조선인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는 동반자가 되었다.
미생물 덩어리인 누룩으로 빚은 술, 누룩과 엿기름으로 만든 약과와 식혜, 젖산 발효로 만들어지는 김치, 콩을 삶아 곰팡이를 발효시켜 만든 장 등이 대표적인 미생물 식품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생물의 교환은 사람과 가축에게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질은 15, 16세기 조선인들을 가장 자주 괴롭혔던 질병이다. 벼농사를 중시해 냇가를 개간한 조선인들에게 이질은 버릴 수도, 안을 수도 없는 숙명이었다.
농사꾼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소에서 유래한 홍역과 천연두는 조선시대에 널리 유행하며 많은 사람을 고통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조선인들은 살기 위해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고,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홍역과 천연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인들에게 홍역과 천연두는 밥알에 숨은 바늘이었다.
▶ 지은이 김동진은…
지은이 김동진은 2006년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한국 생태환경사의 이해' '한국근세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생태환경사를 통해 한국 사회경제사를 재정립하고, 이를 역사교육 현장에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틀라스 한국사'(공저, 2004), '한 권으로 보는 그림 세계사 백과'(공저, 2008), '조선 전기 포호정책 연구-농지 개간의 관점에서'(2009), '인간동물문화'(공저, 2012) 등이 있다.
생태환경사 연구는 근대 과학의 한 방법론으로 분석주의, 이분법,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이 책은 생태환경사를 통해 조선시대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36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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