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내뿜는 서구 염색산단] 술·담배 않아도 암에 걸려 충격

입력 2017-02-23 04:55:05

이젠 체념하고 사는 주민들…이사 안 가고 39년째 거주 "재수 없이 걸린 것" 자책

대구 서구 비산7동과 평리6동 등 염색산업단지와 인접한 지역 주민들은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적잖은 주민들이 천식'비염 등을 호소하고, 수십 년 동안 거주한 일부 주민은 암 투병 중이다. 해당 주민들은 염색산단에서 날아드는 유해공기로 발병한 질환이라고 주장했다.

염색산단에서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39년째 살고 있는 박모(72'여) 씨는 두 번이나 암 판정을 받았다. 8년 전 갑상선암에 걸린 데 이어 5년 전에는 유방암 판정까지 받았다. 박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데다 가족 중에도 암에 걸린 사람이 없어 처음에는 검사 결과를 믿지 않았다. 유방암까지 걸린 뒤에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암담했다"며 "동네 이웃들에게 '염색산단 근처에 오랫동안 살다가 재수 없어서 걸린 것'이라고 말하면서 체념하고 산다"고 전했다.

염색산단 인근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모(69) 씨 역시 2년 전 폐암에 걸렸다. 30여 년 동안 분식집 등 자영업을 해 온 노 씨는 한평생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노 씨는 "감기에 걸린 줄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아 병원을 찾았더니 암이라고 했다"며 "오전 4시 30분이면 눈을 뜨는데 이 시각에는 온 동네가 뿌옇다. 한때 담배를 피운 것도 사실이지만 유해공기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해공기로 인한 악취가 지속되자 노 씨의 아들은 아예 동네를 떠났다. 결혼 이후 한동안 함께 살던 아들은 아이가 생기자 자식 건강이 걱정된다며 북구 구암동으로 이사했다. 노 씨는 "아들이 수차례 악취에 대한 민원을 넣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며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는데 마냥 붙잡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천식과 비염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 주민들은 훨씬 많다. 20년 넘게 비산7동에서 산 최모(56) 씨는 4년 전부터 비염을 앓아 늘 코가 막혀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 씨는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비염에 걸려 고생한다. 동네 이웃들도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히 나쁜 냄새가 나는 것도 문제지만 악취에 유해물질이 섞여 나도 모르게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러한 질병의 원인이 염색산단에서 나오는 유해공기에 포함된 오염물질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박모(45) 씨는 "동네 주민들의 건강상태가 나쁜 것은 발암물질을 포함한 각종 유해물질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씨는 "시와 구청에서 저감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병 주고 약 주는 격일 뿐"이라며 "아예 없애버렸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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