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다." "지도자가 분노라는 말을 쓰면 피바람이 난다."
대선 정국에 때아닌 철학 논쟁이 벌어져 관심을 끌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흥미진진한 '분노 논쟁'을 벌였고, 결국 안 지사가 사과함으로써 문 전 대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두 사람이 주장과 반박을 주고받긴 했으나, 결론은 비슷했다. 안 지사가 "분노는 정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의의 마지막 마무리는 역시 사랑"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문 전 대표는 "분노가 깊을수록 사랑도 깊다"는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둘 다 학생'사회운동을 통해 숱한 '분노'를 체험한 정치가답게 세련되고 수준 높은 논쟁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분노 논쟁'이 노선 차이, 상대방에 대한 견제를 위한 다툼이지만, 인신공격'약점 캐기 같은 구태의연한 공세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보기 좋았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결론처럼 현실 정치에서 분노와 사랑이 공존할 수 있을까? 철학적 종교적으로 심오한 주제여서 정답이란 있을 수 없지만, 둘의 차이를 살펴보자. 분노는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거나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다. 미국 정신건강 전문의 로널드 에프론은 "분노는 우리의 뇌가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 응급조치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뇌는 본능적으로 즉시 행동으로 옮겨 싸우고, 어쩔 수 없으면 살인도 감행하라고 명령한다"고 했다. 분노는 파괴적'폭력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반면 사랑은 자기희생과 타인에 대한 배려다. 사랑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부여한 신의 선물이긴 하지만, 보통사람이 실천하기란 정말 어렵다. 세상에 진정한 휴머니스트가 손꼽을 만큼 적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사랑과 분노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두 개념의 공존은 불가능에 가깝다. 철학'종교 세미나 등에서 나오는 결론도 대개 비슷하다. '분노는 인간 개인에게는 극복할 대상이지만, 때로는 사회 모순이나 폭력에 맞서는 정의 실현의 방법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필요하다.'
철학적'종교적으로도 이럴진대, 보통사람보다 낫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가에게서 분노와 사랑의 공존을 바랄 수 있을까. 문 전 대표와 안 지사의 논쟁은 재미있긴 하지만, 말장난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이 논쟁에서 문 전 대표가 우세를 점했지만, 솔직함에 있어서는 안 지사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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