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연정론 정치 쟁점 부상
여소야대 국회 협치 필요한 상황
정조, 정적과 비밀 편지로 조율
조선 르네상스 꽃피운 탕평 연정
지난 2009년 정조가 직접 쓴 비밀편지 229통이 세상에 나왔다. 정작 깜짝 놀랄 일은 수신인의 정체. 개혁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던 노론 강경파인 벽파의 수장 심환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몰래 소통한 셈이다.
내용도 파격적이다. 정조는 주로 정국 동향, 인사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다. 그런데 단순히 협조를 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심환지가 그의 입으로 정조 생각을 조정에서 직접 피력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아울러 사전조율이 드러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도 강조한다. 실제 심환지는 정조 생각을 대변했고, 정조는 이를 윤허하는 형식을 취했다. 화완옹주의 사면이나 정리곡(整理穀)의 폐단을 고치는 문제 등이 사례로 꼽힌다.
정조식 '짜고 치는' 국정 운영은 '탕평'의 연장이었다. 그의 재위 24년 동안 일관된 탕평으로 그 흔한 피바람 광풍도 없었다. 정국은 평안했고, '조선의 르네상스'가 꽃피었다. 개인적인 한(恨)도 풀었다. 모든 정파 동의를 이끌어내 '사도세자 추숭(追崇)'에 성공했던 것이다. 현대 정치 용어로 탕평을 풀면 '연정'(聯政)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연정'이 정조 치세 성공의 열쇠였던 셈이다.
지난 1999년 중반으로 기억된다. 부산을 떠나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당시 노무현 의원과의 대화 자리. 화제가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대표,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 당 3역이 모두 구 여권 출신이라는 점으로 모아졌다. 우스개 삼아 한마디 던졌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여당 요직을 모조리 옛 여당 출신들에게 줄 요량이었다면, 정권교체는 왜 했습니까." 노무현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놉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언뜻 이해가 안 가 눈을 껌뻑이자 설명이 이어진다. "농사지을 때 일손이 모자라면 능력 있는 일꾼을 불러서 이용하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고, 그런 일꾼을 놉이라고 하죠. 우리가 지향하는 국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출신을 따질 필요 없이 모두 데려다 써야죠. 중요한 것은 정권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망각하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 것이죠. 이것만 가능하다면 과거 정적이었다고 해도 함께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주장했을 때 자연스레 이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연정이 다시 정치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선 도전 일성으로 연정 카드를 던진 것. "국가 운영에서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대연정, 헌법의 가치를 실천할 것이다." 이어 한 걸음 더 나갔다. 탄핵 사태에 대한 반성을 전제로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의 연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당내 대선주자부터 비판에 나섰다. "노 대통령도 (대연정)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다."(문재인) "대연정은 역사와 촛불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이재명) 하지만 안희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새누리당이 싫다. 그러나 연정 수준의 전략적 동맹을 맺지 않으면 (개혁) 추진이 안 된다."
현재 국회 의석 분포상 누가 대통령이 돼도 여소야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사 선거 때 이합집산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해도 단독입법이 쉽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으로 5분의 3(180명) 이상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의회 내에서 협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런 형식 논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승자독식'의 오만(傲慢) 정치를 깨는 것이다. 혼자만 국가를 위하고, 나만 옳다는 '제왕적 대통령'. 발끈해 사사건건 반대하는 야당. 진영 논리로 짝 갈라져 대립과 갈등을 키우는 국회. 누가 정권을 잡든 결과는 또다시 뻔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답은 연정밖에 없다.
"그럼 선거는 왜 하고 정권은 왜 잡으려고 하나?" 충분히 있을 법한 반발이다. 하지만 역사는 안다. 탕평 속에 빛난 정조의 개혁 가치를, 대연정 제안에 담긴 '사람 사는 세상'의 무게를. 결국 연정의 지향점과 그 주인공을 제대로 고르는 일도 결코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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