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새날을 밝히는 닭

입력 2017-02-14 04:55:05

서울대 동양사학과. 백석예술대학교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수필가
서울대 동양사학과. 백석예술대학교 외국어학부 겸임교수. 수필가

닭이 울면 귀신도 바로 사라져

동국세시기 상서로운 새 묘사

어둠 속에서 여명 밝히는 존재

이해하고 용서하는 새해 되길

병아리 그림의 엽서를 받았다. 최근 이런 연하장으로 지인과 근황을 주고받는 일은 옛사람의 일이 되었다. 일본 역시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을 담은 연하장을 보내며 인사를 나눈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의 나라인지라 12동물을 상징하는 '십이지'와 '십간'의 조합을 가지고 우주의 흐름을 이해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일본서기'에 따르면, 불교가 전파되는 그 무렵 백제로부터 전해진 것 같다.

새해를 맞아 토정비결을 가지고 1년의 운수를 점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일본 친구들도 점을 참 좋아하는데, 지간을 가지고 점치는 일은 흔치 않다. 이것보다는 혈액형이나 별자리 같은 것으로 점을 본다. '음력'을 쓰지 않는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지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간혹 한국에서 원정 간 무당을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친구들은 오묘한 우주의 원리를 절묘하게 이용한 상술에 넋을 빼앗기곤 한다.

올해는 닭의 해다.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 "설날 인가에 내려온 귀신이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가지고 가는데, 닭이 울면 바로 사라진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에는 닭 그림을 벽에 붙이고 액이 물러나기를 빌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렇게 닭은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존재이며, 액운을 물리치는 상서로운 새로 희망을 상징했다.

"꼬끼오." 닭의 울음소리는 벽사의 기능과 동시에 새벽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코케콕코"라고 우는 일본 닭도 같은 역할을 한다.

하늘나라에 천황의 조상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와 동생 스사노오가 있었다. 하루는 스사노오의 심한 장난에 화가 난 아마테라스가 바위 동굴 안으로 숨어버리자, 세상은 암흑 속에 빠졌다. 이에 여러 신들이 모여서 궁리를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쉬지 않고 우는 새'(常世長鳴鳥'닭)를 울게 하자는 거다. 닭이 울면 태양이 뜬다. 닭 울음소리에는 태양신을 부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일본 신사에서는 닭을 풀어서 키우는 곳이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열도에서는 기원전 2세기경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닭도 전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소량의 출토로 보아 식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불교에 따른 육식금지령으로 닭은 오랫동안 식용보다는 '때를 알리는 새'로 신성시되었다.

그나저나 새벽을 알리는 소리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도 잠을 깨우기 위한 '모닝콜'로 설정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음악이 되니 말이다.

교토를 중심으로 화려한 귀족문화가 형성된 헤이안시대(794~1185)의 대표작 '이세모노가타리'에 닭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도시의 귀공자가 후미진 동쪽 지방을 여행하다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서는데, 시골 여자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는다. "날이 밝으면 저 바보 같은 닭을 물통에 집어넣어야겠다.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울어서 님을 보내버리다니." 이 노래로 말미암아 남자는 여자를…, 여자를 어찌하였을까? 이 노래를 들은 남자는 여자를 완전히 떠나버린다. 헤이안의 귀공자는 다듬어지지 않은 여자의 솔직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둘러싼 한일 갈등의 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소녀상 설치에 대해 주한대사 일시 귀국과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 등으로 강한 의사를 표하고, 우리는 소녀상 철거를 운운하기 전에 가해국으로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하며 더 나아가 한일위안부 문제 합의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닭의 울음소리는 암흑 속에서 새벽을 부른다. "꼬끼오" "코케콕코" 다른 소리를 내고 운다고 해도 날은 밝아온다. 이해하고 반성하고 용서할 수 있는 새해가 펼쳐지기를 바란다.

▶알립니다='세계의 창' 필자 장성민 전 국회의원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고선윤 백석예술대 교수로 필자가 교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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