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애벌레여도 나비여도 좋다

입력 2017-02-13 04:55:02

'청년 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의 저자 고미숙은 백수애정론을 펼쳤다. 비정규직의 꿈이 정규직이듯 정규직의 꿈은 백수이고, 그 원조로 공자를 꼽았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며 수많은 나라에서 취업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그를 채용해주지 않아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가 백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대가 낳은 백수이고, 그 산물이 바로 '논어'다. 붓다 역시 일국의 후계자라는 정규직을 박차고 나와 탁발을 하는 수행자가 된 자발적 백수였다. 화폐로부터의 자유, 스위트홈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자기 배려의 양생술 등의 윤리적 기초를 익히고 공부하면 모두가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그녀(고미숙)는 단언한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는 현재가 과거를 정의한다고 했다. 열 명이 있으면, 그 열 명 각기 다른 '지금'에 의해 채색된 각각의 해석이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현재가 행복해야 과거도 행복하게 해석할 수 있고 그러기에 현재에 더욱 마음을 쏟아야 한다.

간혹 도서관도 아닌 작은 집 안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지 못해 헤맬 때가 있다. 수십 개의 책장을 두 겹으로 잠식한 책들 사이를 비집다 보면 머릿속은 오리무중이다. 예정되지 않은 길에서 의외의 만남이 이루어지듯, 그렇게 다시 만난 책이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봄빛 선연한 노란 바탕에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친 나비가 인상적이었다.

호랑 애벌레가 길을 떠난 건 '삶이란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 때문이다. 꼭대기로 오르려 허덕이는 애벌레들을 보고 자신도 그 속으로 들어가 밟고 올라서느냐 밟히느냐의 싸움을 한다. 노랑 애벌레와의 사랑에 잠시 발길을 되돌리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기둥의 꼭대기에서 눈부신 날개를 펼치고 나는 나비를 본 순간 마음이 변한다. 높은 곳에 이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올라야 한다고.

십 대에는 분명 '나비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운 삶을 탄생케 하고 세상에 꽃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멋진 나비. 그런데 지금은 '애벌레로 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나비의 삶이 애벌레로만 사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일까? '난다'와 '긴다'는 생존방식의 차이일 뿐인데, 설령 아무것도 없는 꼭대기라도 자기 의지로 기어오르는 삶이 정말 의미가 없는 것인가. 자신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인지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모범답안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이라면 애벌레여도 나비여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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