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까마귀의 딜레마

입력 2017-02-10 04:55:02

'수사학'(레토릭)의 기원을 문학'철학에서 찾기도 하지만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즉 수사학은 '설득의 화술, 변론술'이라는 소리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소유권 소송이 수사학을 낳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는 참주정 체제였다. 귀족정치가 쇠퇴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쥔 참주(僭主)들이 정치를 주물렀다. 당시 시칠리아에는 참주의 폭정 때문에 땅을 빼앗기거나 추방된 사람이 많았는데 참주가 몰락하자 소송이 줄을 이었다. 당시 재판은 민중이 판결하는 대중재판이었다. 이들을 설복하기 위한 최대 무기는 '말'이었다. 말을 잘해야 재판에서 이길 수 있었기에 자연히 수사학이 출현한 것이다.

수사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티시아스가 남을 설득하는 기술을 배우려고 코락스라는 전문가를 찾아갔다. 코락스는 그리스어로 '까마귀'인데 그는 '변론술'이라는 교과서를 쓴 인물이다. 제자가 된 티시아스가 더 이상 배울 게 없자 약속한 보수를 주지 않기로 작심했다. 재판관이 모인 자리에서 코락스에게 제안했다. "내게 수사학 기술을 가르쳐주었다면, 내가 보수를 받지 말라고 당신을 설득할 경우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돈을 낼 필요가 없소. 약속을 어겼으니까."

그러자 코락스가 말했다. "만일 자네가 한 푼도 받지 말라고 제대로 설득한다면 당연히 수강료를 내야 하네. 내가 약속을 지켰으니까. 반대로 설득시키지 못해도 돈을 내야만 할걸세. 재판에서 졌으니까." '코락스의 딜레마'라는 일화다. 재판관들은 "영악한 까마귀에 영악한 새끼"라는 말로 판결을 대신했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박영수 특검팀의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비공개를 약속한 조사 일정을 언론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조사를 거부해 특검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동안 검찰 수사를 받겠다는 약속을 깬 전력이 있는데다 특검마저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대통령의 몽니가 마치 티시아스의 수사학처럼 들린다.

이번 봄은 수사학 바람이 거셀 전망이다. 탄핵 정국에서 대선 후보들이 연일 '공약'이라는 수사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표를 얻기 위해 미사여구나 연기술도 거부하지 않는다. '히포크리시스'(hypocrisis)는 그리스어로 연기술(演技術)을 뜻하는데 오늘날 '위선'(僞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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