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우 새누리당·국회의원 국회 개헌특위 간사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처해 직무정지 상태가 됐다. 국민들은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고 연일 거리로 나선다. 100여 년 전 구한말을 떠올리게 하는 외교안보현실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다음 권력을 잡는 데 혈안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사실 탄핵이라는 극적 요소를 제외하면 정권 말기의 이런 상황이 그다지 낯설지도 않다.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친인척 및 측근 관리 실패로 불행을 맞았기 때문이다. 황태자, 소통령, 대군 등 이름만 달랐을 뿐 어느 정권에서나 '최순실'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동생이나 친인척들과 만나지도 않는 등 애를 썼지만 이 불행을 피해가지 못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제도의 문제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왔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넓게는 2만 개에 이르고 나라 예산이 400조원이 넘는데 어떻게 다 일일이 신경 쓸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좌지우지해보려고 권력의 불나방들이 달려든다. 그중 누군가는 완장을 차고 호가호위하게 된다.
우리가 이번에 똑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면 3, 4년 뒤 또다시 탄식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다음 정권의 '최순실'이 되려는 자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을, 불행한 국민을, 불행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 신속하게 헌법을 개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반드시 대선 전에 헌법을 개정해서 새로운 체제의 정부를 출범시켜야 한다.
일부 야당은 시간이 부족하다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개헌은 연구가 아니라 선택의 단계에 와 있다. 지난 10여 년간 연구를 통해 제18대 및 제19대 국회의장 자문위, 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완성한 헌법개정안만 5개나 된다. 1987년 헌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안되고부터 국민투표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40일이었다. 이달 말 즈음 헌법개정안을 제안하면 4월 재보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치러 개헌을 완료할 수 있다.
헌법개정의 요체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다. 인치(人治)의 시대를 끝내고 국가운영의 원리로서 분권과 협치(協治)를 도입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나누는 지방분권도 해야 한다. 검찰의 권력, 경제 권력도 나눠야 한다. 분권형 개헌은 지식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OECD 선진국 중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유럽은 절대 권력을 몰아낸 시민혁명의 성공, 나치즘의 극복 등을 겪으며 대다수 국가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내각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이 대통령제를 운영하지만 우리처럼 제왕적 권력을 갖지 못한다. 대통령이 8천여 개의 공직을 임명하지만 그중에서 1천200개의 공직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우리 국회의 수준이 떨어져 분권형 개헌이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분권형 개헌을 하고 나면 국회도 달라진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가 사라지고 분권과 협치의 정치 제도가 도입되면 각 정파가 사생결단으로 극한 대립을 하는 일이 크게 줄어든다. 국가의 장기 과제들이 정권 바뀌면 호떡 뒤집듯 뒤집히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국회가 내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니 그동안 정치를 꺼리던 훌륭한 인재들이 국회로 진출하게 되어 국회의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개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 왔다. 현행 헌법은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해 태어난 것이다. 분권형 개헌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 봄에 반드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싹을 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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