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완물상지(玩物喪志)

입력 2017-02-07 04:55:09

중국의 언어학자이자 작가 린위탕(林語堂)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 유명한 농담이 있다. "그것도 못 끊어? 나는 쉰 번도 더 끊었다…."

자칫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상대를 배려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대화 방식에서 언어학자다운 면모가 배어난다. 분명 금연을 재촉한 화자는 농담을 전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듣는 사람도 크게 불쾌한 감정은 없으니 농담 가운데 진담이 힘을 얻은 셈이다. 해학까지는 몰라도 격이 살아 있는 대화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벌이는 트위터 설전도 흥미롭다. 트럼프는 며칠 전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슈워제네거가 어프렌티스 쇼를 망치고 있다. 내가 할 때보다 시청률이 형편없다"며 조롱했다. 같은 공화당원으로서 자신의 정책을 비난한 그에게 뒤끝을 보인 것이다. '어프렌티스' 쇼는 트럼프가 10년 넘게 진행해온 NBC 방송 리얼리티 쇼로 올해 슈워제네거가 바통을 받았다.

슈워제네거의 반격도 만만찮다. "내가 대통령 할 테니, 시청률 전문가인 당신이 쇼를 진행하지? 모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말이야"라며 비꼬았다. 또 2006년 주지사 시절 자신의 납세 실적을 링크해 한 방 먹였다. 설전 당사자들은 험담이 불쾌하고 거북하겠지만 지켜보는 이는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웃고 넘길 수 있는 말의 공방이어서다. 오히려 다음 대거리가 기다려질 정도다. 유행하는 표현으로 '재미진' 설전이다.

이에 비하면 요즘 우리 국민은 거의 매일 울화통이다. 특검에 불려나가면서 목청을 높인 최순실의 고함에 속을 끓인 사람이 많다. 오죽하면 청소부 아주머니가 "염병하네" 대거리를 했을까. 안종범 전 수석에게 뇌물을 건넸다 구속된 박채윤의 '강압 수사' 발언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제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금괴 200t' 루머에 재치있게 대응해 관심을 모았다. "금을 팔아 청년 일자리 만들겠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 "완전히 엮인 것"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마냥 뻗치는 박근혜 대통령에 비하면 훨씬 순발력이 있다.

옛말에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했다. '서경' 여오(旅獒)에 나오는 말로 물건에 너무 집착하면 뜻을 잃는다는 의미다. 사람을 희롱하면 덕을 잃는다는 뜻도 담겨 있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말의 불화(不和)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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