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30대 대통령이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프랑스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이 아닌 신생 중도 정당 출신이….
정치적 온건 성향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올봄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을 꺾고 국제 정가를 휩쓰는 외국인 혐오적 포퓰리즘의 파상 공세 속에서 프랑스를 구해낼 수호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크롱은 프랑스 고위 관리들을 배출해온 명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으로 한때 투자은행에 몸담았다가 사회당에 들어가 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내는 등 고속 출세 가도를 걸어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진로를 변경하면서 사회당을 탈당해 중도 정당을 창당했다.
마크롱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25세나 연상인 부인의 존재다. 30대의 남편과 60대의 부인, 이들 부부의 스토리가 마크롱의 정치적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유력 주자로 떠오른 마크롱 부부의 이색적인 러브스토리와 그 배경의 프랑스적 상황을 조명했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짓 트로뉴는 마크롱이 프랑스 북부 아미앵의 예수교 소속 고교생이었을 때 프랑스어 교사였다. 15세의 10학년 학생이었던 마크롱은 3명의 자녀를 둔 당시 40세의 기혼녀 트로뉴를 처음 만났다.
트로뉴의 자녀 가운데 한 명은 마크롱과 같은 학급이었다. 트로뉴는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고 학교 내 연극 동아리를 이끌었다.
조숙한 마크롱은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데다 트로뉴가 지도한 연극에서 주역을 맡았다. 트로뉴는 나중 마크롱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마크롱이 당시 보통의 청소년과는 확실히 달랐다고 회고했다.
11학년이 된 마크롱이 트로뉴에게 자신을 위한 희곡을 써 달라고 요청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매주 금요일 대본을 갖고 만나면서 믿기 힘든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트로뉴는 나중 파리마치에 밝혔다.
이들 관계에 놀란 마크롱의 부모는 그를 파리로 보냈다. 트로뉴도 지친 상태였다. 당시 아미앵을 떠나면서 마크롱은 트로뉴에게 "결단코 다시 돌아와 당신과 결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파리로부터 장거리 전화 공세에 시달린 트로뉴는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파리에서 교사 자리를 구했다. 트로뉴는 "당시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을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2007년 결혼식에서 마크롱은 트로뉴의 자녀들에게 자신을 받아준 데 감사를 나타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상적인 부부는 아니지만 실제 존재하는 부부라고 강조했다.
다소 이례적인 이들 부부를 놓고 항간에 뒷말도 많았다. 한 라디오의 유머작가는 다리가 긴 트로뉴를 '갱년기의 바비'(인형)라고 비유하는가 하면 비판자들은 마크롱을 교사의 애완견이라고 지칭했다.
그렇지만 프랑스 언론은 전반적으로 이들 부부에 호의적이었다. 잡지들은 트로뉴를 패션 아이콘으로 호칭했다. 이복 손자들에게 젖병을 물리는 마크롱의 모습도 실렸다.
프랑스의 경우 사생활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관대하기 그지없다. 유명 정치인도 사생활은 언론으로부터 보호되며 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생활을 도덕적 관점에서 대하지 않는 전통을 오히려 그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단 한 가지 그 사랑이 진실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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