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내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숙소 주위는 밤이 되어도 밝습니다. 밤에도 가로등이며 창으로 보이는 많은 불빛들이며, 또 네온사인들 같은 불빛들이 켜져 있지요. 그래서인지 어둡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시외에 살 때 제가 지내던 사제관은 마침 옆에 다른 집들도 별로 없어서인지 큰길의 가로등 외에는 주위에 불빛이 별로 없는 편이었습니다. 어쩌다 외출해서 늦은 시간에 돌아오면 깜깜할 만큼 어두웠지요. 처음 한동안은 '이 주위엔 집들도 없고, 참 어둡네~' '저녁 어두울 때 돌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외등을 하나 더 다는 게 좋을까~' 하고 생각도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말합니다. "참 세상이 어둡다"고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존엄성,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같은 정신적인, 영적인 가치는, 그런 가치에 따른 생활은 물질적인 가치, 이기적인 자세에 밀려서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사람보다도 돈이 먼저인 세상입니다. 나와 '소수의 우리'의 이익을 위해선 '다수의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절차나 규칙도 무시하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따윈 다 잊어버립니다. 나와 돈이 최고인 세상입니다.
이런 측면들만이 아니라, 특히 작년 말부터 요즘까지 계속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몰랐던,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깊은 어두움과 함께 살아왔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사로운 욕망으로 인한 불법과 편법, 부정과 부조리로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를 뒤흔드는 거악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분노하는 것 같습니다. 광장, 길 위의 촛불은 그것을 드러내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탓하고 단죄하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이상 우리 모두가 불법과 편법, 부정과 부조리의 어두움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촛불을 드는 것 같습니다. 어두움에서 벗어나 다시 우리 사회를, 우리들을 밝혀야겠다고 촛불을 드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함께,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와 함께 촛불을 들면서 그런 다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광장, 길 위의 촛불을 보면서 촛불의 빛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빛은 우리들 생활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고 숨겨집니다. 빛이 있어야 드러납니다. 빛은 무엇이든 숨기지 않습니다. 빛은 무엇이든 비추어 밝히고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이 없어서 어두움 속에 있을 때는 누구인지, 무엇인지 볼 수 없고 알 수 없지만, 빛이 있으면 우리는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빛이 그런 자기의 본질적인 역할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빛이 항상 어두움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빛을 가리지 않고 밝혀 놓습니다. 그 빛을 감추지 않습니다. 빛을 가린다면 빛은 더 이상 자기의 역할을 못하게 되고 우리는 밝음이 아닌 어두움 속에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 이 세상을, 이 사회를 환히 밝히는 빛이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또 우리의 생활이 이 사회의 어두움을, 서로를 환히 밝히는 빛이라는 말씀은 어두움 속에서 힘들고 지친 우리들에게 인정과 격려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길에서, 광장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손에 들린 촛불은, 우리가 함께 스스로 또 서로에게 빛임을, 빛으로 살겠다고, 빛으로 살자고 다짐하고 촉구하고 응원하는 촛불이기도 하리라 생각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천주교대구대교구 1대리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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